출판금지 제소당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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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금지 제소당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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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일본의 주간週刊文春 2014년 12/18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박유하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 교수 (사진 : 프레시안)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인가.


악화되는 한일관계속에서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바라며 한국인 여성교수가 집필한 책이 한국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前위안부의 심정을 동정하여 쓴 책이 어째서 규탄받고 있는가.


"저는 위안부문제에 관해서 한국도 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지난해 8월 한국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으로 한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바랐지만 상상이상으로 강력한 반발을 받았습니다. 前위안부 주변 사람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서 고소당하고, '한국사회의 정의와 가치관에 반한다'며 강하게 비판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박유하씨(57)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악화되는 한일관계에서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조건으로 위안부문제 해결을 내걸고 있다. 그러던 중 11월 7일에 박씨가 일본어로 쓴 <帝国の慰安婦 植民地支配と記憶の闘い>이 출간되었다. 지난해 8월 한국판에 이어서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러 간행된 이 책은 복잡하게 꼬인 위안부문제를 풀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박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게이오대학과 와세다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배웠고 현재 세종대학교 일본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한일관계에 조예가 깊고 2006년에는 한일 양국을 가로막고 있는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화해를 위해서>로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했다. 왜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는가. 본지는 서울로 날아가 소용돌이 속 인물인 박씨를 인터뷰했다.


"일본의 인터넷 언론에 연재했던 원고에 한국어로 가필한 것을 지난해 8월에 출판했습니다. 한국어판을 먼저 내게 된 계기는 2012년 5월에 일본의 노다 정권이 제안한 해결안을 한국이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안부문제를 한국에서도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前위안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1990년대는 한국 국내에서도 '식민지 지배의 문제다'라고 인식했을 터입니다. 그런데 2000년쯤부터 '세계여성인권문제'라는 문제로 바뀌었고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온당하지만 그것만으로 위안부문제의 전체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국'이라는 시점에서 보는 것이 위안부문제를 근원적으로 생각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위안부문제는 식민지지배와 점령을 빼놓고는 생각 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다양한 각도에서 위안부문제의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위안부에 관한 상세한 史實은 물론 한국의 지원단체와 헌법재판소의 판결 문제, 그리고 UN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이제껏 일본정부의 노력과 앞으로의 과제까지 거의 모든 시점이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라는 시스템이 갖는 '국가세력확장의 열망'이 위안부를 만들어 냈다고 분석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각 열강에 의한 제국주의・식민지정책이 만연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모방하여 한국을 지배하에 두면서 위안부의 '동원'도 실행했습니다. 제국주의 아래에서 여러나라의 군대가 '여성의 성'을 착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시점에서 보면 위안부 동상을 미국에 설치하는 움직임은 아이러니 할 뿐입니다. 전후, 한국에서는 재한미군유지를 위해서 박정희 前대통령이 미군을 위해서 위안부시설을 지원했습니다. 미국은 세계각국에 군을 파견하여 '새로운 제국'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며 위안부를 만들어 낸 나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위안부문제는 현대에도 계속되는 보편적인 문제이며, 서양은 일본을 비판 할 수 입장이 아닙니다. 물론 동원과 관리 방식은 다릅니다. 위안부문제를 '일본의 전쟁범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기 어렵게 합니다."


한국에서 위안부문제는 "일본군에 의한 20만명의 소녀가 강제연행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그 발언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되어있는, 노려보는 듯한 표정으로 대사관 정면을 바라보는 위안부소녀상은 그 상징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前위안부의 실상에도 관심을 기울여 그녀들의 가슴 속 통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 온 前위안부들의 인생은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할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논의할 때에는 팩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어진 팩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업자'에 의해 많은 여성이 끌려와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그녀들은 일본인의 대체 여성으로서 일부 열외를 제외하면 관리매춘에 종사를 강요당했습니다. 군에 의한 '강제연행'에는 없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군의 관리와 관여도 명확합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그녀들은 군인같은 역할마저도 기대받았습니다. 위안부의 평균연령은 20대로 추정된다는 자료와 증언이 있습니다. '소녀'의 이미지가 널리 퍼진 것은 유감입니다만 강간과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소녀'이며 실제로 그곳에 없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 형태의 위안부와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를 높여가면서 되도록 사실에 가까운 형태를 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검증은 한국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듯 하다. 앞서 말했듯이 위안부 지원단체는 박씨를 비난했고 9명의 前위안부들의 명의로 명예훼손 명목으로 손해배상과 출판금지를 요구하며 민형사 합쳐서 총 3개의 소송을 일으켰다. "원고의 대리인은 제가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말했다', '위안부는 피해자가 아니라 한일갈등의 원인이라고 말했다'라는 문서를 보도기관에 배포했고 그것을 한국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前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비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前위안부 중에서는 증언내용을 번복한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前위안부마저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前위안부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여러가지 주변상황이 증언을 바꾸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들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매춘'이라는 형태로 성을 착취당했습니다. 여기에는 '대체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을 강요당한다는 의미로서의 '동지'적 측면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중국 등 '적'으로서 싸운 각국의 여성들과는 기본적으로 포지션(입장)이 다릅니다. 이것은 오히려 일본의 일부세력이 위안부를 단순히 '매춘부'로 보려는 생각에 대한 비판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지원단체는 이런 문맥은 무시한 채 일본에서 쓰였던 '매춘'비판 부분과, '동지'라는 단어만을 이용해서 저를 고소한 겁니다. 왜 강한 반발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우선 前위안부 주변에 있는 활동가들이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들은 이제껏 다른 인식을 말하는 것은 일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일본군에 협력했던 한국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지원단체나 연구자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 제국의 위안부 표지


위안부문제의 대표적인 지원조직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다. 정대협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고 매주 수요일에 데모를 개최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11월 28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문제를 전세계에 알리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前위안부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 '나눔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이다. 이 시설은 한국의 연예인을 시작으로 많은 방문자, 그리고 고교생과 대학생이 위안부 문제를 배우는 장소로서도 기능하고 있으며, 위안부문제의 메카로 알려져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정대협과 나눔의 집은 前위안부의 대표적인 지원조직이며 서로 연계해가며 위안부 문제를 '운동'으로서 지탱해 왔다.


박씨가 비판의 눈을 향한 것은 이런 지원단체의 운동 방식에 관해서다. "前위안부에게 '배상금'과 '총리의 사죄 편지'를 내려고 했던 1990년대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의 노력과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의 제안을 정대협은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를 무엇하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발자를 늘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일관계를 나쁜 쪽으로 이끈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정대협의 활동을 전부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시켰다는 노력은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위안부문제에 관한 오해를 퍼뜨린 것, 그리고 해결로 이끌지 못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측의 노력을 일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자세도 문제해결을 매우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저는 책에서 그런 자세를 비판했습니다만 지원단체에 의한 고발은 역으로 제가 비난한 지원단체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출간 된 후 어떤 논의도 대화도 없었습니다만 10개월이나 지난 6월에 갑자기 고소당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상대와 대화를 하지 않고 외부의 힘을 빌려 억압하려 하는 자세입니다. 재판은 前위안부 9명이 원고가 되어 일으켰지만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에게 책의 분석을 의뢰한 것은 나눔의 집 소장이었습니다. 前위안부 할머니 중에는 병상에 누워있거나 앞을 잘 못보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으로부터는 '(나눔의 집 직원이) 책을 가져와서 이렇게 썼다고 말하더라'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에서도 지원단체의 의향은 강하게 반영되어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소장의 취지는 책에 기술된 '매춘과 동지는 거짓이니까 명예훼손이다'라는 내용을 거론했습니다. 심지어 8년전에 출간한 <화해를 위해서>도 문제 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번째 심리부터 고소 취지가 바뀌었습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생각 자체와 저의 '인식'이 문제라며 '한일병합을 인정하고 있다', '전쟁을 찬미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서에는 병합과 전쟁을 비판하고 있지만 찬미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번째 심리에서는 원고의 서면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총검을 든 군이 대대적으로 들판에서 봄 나물을 따는 조선의 딸들을 트럭에 강제로 실어서 데려가는 듯한 징집보다는, 취업사기와 인신매매같은'형태를 취했다고. 당초, 원고는 강제연행설을 주장했지만 취소한 모양새입니다. 그 대신에 나온 것은 '한국사회의 정의와 가치관에 반한다'라는 비판이었습니다."


박씨를 향한 압박은 재판뿐만이 아니다.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던 박씨의 저서 <화해를 위해서>도 역시 원고측이 문제삼으며 우수교양도서 취소를 요구한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압박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눔의 집 소장은 한국판이 출간된 이후 박씨가 근무하는 세종대학교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내걸린 플래카드에는 "박씨를 구속하라.", "대학에서 해고시켜라."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 트위터에는 "(박유하는)일제의 더러운 창부, 길에서 만나면 얼굴에 침을 뱉어줍시다."라는 헤이트스피치까지 확산되고 있다. 위안부문제를 검증하려고 한 것만으로도 '친일'취급을 받으며 철저하게 매도당하고 있다.


"책을 출간한 뒤 몇 명의 前위안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지난해(2013년) 가을, 나눔의 집에서 한 위안부 할머니와 식사를 했을 때 그녀는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일본어가 유창했는데 '그들(일본)을 용서해 주고 싶어', '일본을 비난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용서함으로서 일본이 새로운 행동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던 겁니다. 그녀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 동상을 세우거나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정대협의 활동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녀와는 여러차례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만나면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쓴 내용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나눔의 집은 박씨와 그녀와의 관계를 경계하며 면회를 방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가족도 없고 나눔의 집에서는 고립되어 있어서 저를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나눔의 집은 저와 그녀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의 자유의지를 방해하는 행동을 거듭했습니다. 2014년 6월, 그녀는 몸이 쇠약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나눔의 집 소장은 '이 분도 국가배상을 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명백히 본인의 뜻과 다른 말이라서 많이 놀랐습니다."


위안부문제가 폐색상태에 빠진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 前위안부를 운동을 위한 인질로 만들려는 모순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제해결을 바라는 박씨의 책도 異論을 용납치 않는 한국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비난받고 재판받고 있다. 그녀에게 놓여진 고난은 위안부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상징하고 있는듯 하다. "재판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찬미하고 있는 저의 인식이 문제다'라는 말을 듣지만 그 전제 자체가 틀렸기때문에 심각합니다. 학자들도 기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고소를 비판하는 언론도 있었고, 책을 호의적으로 읽은 서평도 여럿 있었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저를 옹호해 준 사람들이 조직화를 꾀하는 곳도 있습니다. 재판의 행방은 한일 독자 여러분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한일 여러분의, 앞으로의 사고방식과 움직임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때문입니다. 편향적인 생각을 가진 양극단이 대립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들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포기한다면 한일관계는 점점 나빠질 겁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쓴 <제국의 위안부>가 진지하게 해결책을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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