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신 번역 [ニュース]

"길 위의 요리사"라 불린 남자, 도시에서 살아가는 각오와 현실

이 글은 Yahoo! Japan 기사의 번역문입니다

「路上料理人」と呼ばれる男 都会に生きる覚悟と現実



도쿄 유수의 환락가 '신주쿠'. 그 주변에 위치한 공원에, 그가 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홈리스를 "현대의 수렵채집민족"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한 것은, 그 유명한 뉴욕타임즈였다. 홈리스가 우리보다 더 충실한 식생활을 보내고 있다면 놀랄 것이다. 길 위의 요리사'로 불리는 어느 홈리스의 일상을 취재했다.


"길 위의 요리사"라 불린 남자


오전 5시. 홈리스 '사토'의 아침은, 공원 수돗가에서 쌀 5인분을 씻는 일부터 시작된다. 나이는 약 60대. 앞치마를 걸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그가 노숙자라는 사실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짧게 정돈 된 머리칼. 건강해 보이는 혈색의 얼굴. 낡은 운동화를 신었지만, 그는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냄새는 찾아 볼 수 없다.


'사토'는 동료로부터 '길 위의 요리사'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같은 처지에 있는 홈리스를 위해서 1일 2회, 식사를 제공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솜씨는 왠만한 요리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판이다. 사토에게는 일과가 있다. 그것은 식단을 짜는 일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방문한 날은 다음과 같았다.


#7월 모일 맑음

- 아침 밥 : 바지락된장찌개, 오뎅, 낫토, 아사쿠사김

- 저녁 밥 :회(도미, 다랑어뱃살, 방어), 무당게된장찌개, 시금치무침


▲ 사토의 아침은 식단을 짜는 일부터 시작된다. (2013년 촬영)


무엇보다 메뉴 레퍼토리가 놀랍다. '스키야키'나 '나베야끼우동', 양식인 '고로케'와 '비프시튜'도 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 1일 2식으로 300엔.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을 조건으로 주위에 사는 같은 처지의 약 열 명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영양균형을 고려한 길 위의 일즙삼채(一汁三菜)[각주:1] (2013년 촬영)


"옛날엔 말야, 여기에도 많은 동료가 있었으니까 발전기로 튀김을 하거나, 다 같이 만두를 만들어서 구워먹고, 고기도 쉽게 구할 수 있었지."


또 한 번 놀란 것은 스스로 쓴 메뉴를 들고 자전거로 식재료 조달을 하러 간다는 사실이다. 사토는 이것을 '먹이줍기'라 부르며 웃는다.


"우린 말야, 돈이 없으니까 식재료를 얻어 와. 고기는 고기집. 생선은 술집. 술은 모 술집체인점.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먹을 수 있는 재료를 남겨주지. 도쿄는 차갑다고 하지만 아직은 살만 해."


 식재료는 위생을 고려하여 되도록 전부 소비하도록 하고 있다. (2013년 촬영)


이제부터는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환락가 입구에서 헤어졌다. 잠시 후, 비닐봉투 한 가득 식재료를 들고 있는 사토의 모습이 나타났다. 재밌는 것은 사토가 들고 있는 생선은 도미, 참치 등 모두 '고급생선'이었다.


"요즘은 계속 불경기잖아. 연말을 빼면, 항상 값비싼 생선이 남아. 어떨땐 성게나 전복을 줄때도 있어. 나이가 있으니 고등어나 정어리같은 서민적인게 좋지만 말야."


비닐봉투 속을 들여다보니 기름진 질 좋은 방어였다. 가격표에는 1,180엔이라는 글자. 이런 생선식품은 폐점과 동시에 폐기된다. 이 날 방어는 무와 방어조림으로 변신했다. 사토의 요리를 먹는 60대 홈리스 남성은, 다양한 메뉴가 마치 아파트의 대중식당같다며 혀를 내두른다.


 동년배들에게도 카레는 인기가 높다. (2013년 촬영)


"자기 처지를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어. 특히 혼자서 유통기한이 지난 빵처럼 식은 음식을 먹을 때 그렇지. 하지만 여기서는 매일 식사가 기대되지. 맛도 어지간한 가게에 뒤지지 않아."


"생활에 필요한 것은 전부 길 위에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개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여기서는 제대로 돈을 주고 산다. 조미료 외에 길 위의 요리사에게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을 구입한다.


"길에서 주은 냄비나, 식칼이라도 정성들여 갈고 닦으면 반짝반짝이지. 하지만 부탄가스와 냉장고를 대신할 얼음, 이 두 가지만큼은 절대로 길 위에 없지. 그래서 귀해."


 좁은 공간속에 조리도구가 정돈되어 있다. (2013년 촬영)


생활필수품 정보는 빈 깡통을 주으러 나간 동료가 알려준다. 사토의 '먹이줍기'에 동행하며 놀란 것은 쓰레기로 폐기되는 식품의 엄청난 양이다. 요리에 필요한 냄비나 후라이팬 등의 도구는 얼마든지 길 위에서 얻을 수 있다. 그것들은 아직 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폐기처분한 것들이다. 사토는 길 위에서 살아가기 위한 각오가 있다.


"우리는 땅바닥에 버려진 음식물에는 절대 손을 안 대. 쓰레기통도 뒤지지 않아. 홈리스라는 것 만으로 더럽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보험증이 없는 우리에게는 건강이 제일이야. 잘못 먹었다가는 그 순간 목숨을 잃지."


나무 아래 자랑스런 내집


 사토의 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2013년 촬영)


사토의 집은 공원변두리의 벚꽃나무 아래에 있었다. 나무가지를 이용하여 로프를 당겨 텐트를 만들어 1.5평정도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 일대에는 여덟개의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사토의 집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관록있다.


안에 들어서면 바로 옆에 키친. 후라이팬과 냄비 등 조리도구에 섞여 간장과 식초 등 조미료가 줄지어 있다. 발밑은 카페트가 깔려 가장 안 쪽에는 이불, 얼음이 들어있는 스티로폼상자는 냉장고를 대신한다.


"된장도 매일 똑같으면 질리니까 몇 종류나 있어. 술은 소주뿐이지만 반드시 물과 섞어 마시지. 이곳에서의 생활의 즐거움은 경마와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읽는 현대소설이려나."


 경마경력과 홈리스기간은 거의 같다. 만마권(万馬券)[각주:2]을 맞춘적도 있다. (2013년 촬영)


그러고보니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경마중계가 흘러나왔다. 어쩐지 경마경력은 노숙생활보다 길어 보인다. 사토는 요리로 하루 3천엔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한 달에 약 9만엔. 거기서 생활용품을 뺀 4만엔정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이다. 사토는 그 대부분을 경마에 쏟아붓는다.


 야채를 많이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에 신경쓴다. (2013년 촬영)


"동료의 호불호를 식단에 반영한다"


사토는 홈리스가 되기전의 자신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본래 사토라는 이름이 본명인지도 알 수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운송회사에 근무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대규모 정리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었다. 그것을 계기로 가족과 떨어져 길 위로 나왔다. 모친이 요리를 잘 했기때문에 어릴적부터 함께 주방에서 도왔다고 한다. 노숙한지 15년. 이제 거의 과거를 아는 인연은 없다. 


 "뒷모습은 찍어도 돼."라는 사토. (2013년 촬영)


수개월에 한 번, 행정담당자가 생활보호를 신청할지 찾아와서 "노상 탈출매뉴얼"이라는 소책자를 놓고 간다. 하지만 사토는 자신이 홈리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의 '집'도 있고 가족과 같은 동료도 있다. 건강만이 걱정이지만 길 위를 벗어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나이는 아니지. 그리고 그 녀석들에게 밥을 먹여줘야 해. 돈과 집마저 손에 넣으면 인간은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노숙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깨달았지."


사토의 키친에는 보살펴 줄 홈리스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적은 메모가 붙여져 있다. 그리고 식사를 가져다 줄 때마다 동료의 생활모습과 건강상태를 신경쓰며 상담을 해준다. 사토는 동료들을 챙겨준다.


 몸이 건강한 동안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다. (2013년 촬영)


공원은 고독의 막다른 곳


홈리스를 둘러싼 현실은 냉엄하다.


수배사라 불리는 일용직 알선업자도 줄고, 기댈 곳 없는 중년, 고령자에 이어 젊은 홈리스도 급증했다. 휴일이면 백명이 넘는 홈리스가 시민단체의 무료급식에 줄을 선다. 자원봉사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독과 불안, 이를 달래기 위해서 술에 쩔어 알콜의존증에 빠지는 홈리스가 많다. 거리위에서 죽어도 가족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사토의 주변에는 이상하리만큼 비장함을 엿볼 수 없다. 홈리스로서 길 위에서 살아간다는 각오가 있기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찾아오는 손님도 많기때문이다.


"근처에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이 오지. 경마친구는 물론이고 공원 청소부가 아직 쓸만한 것을 주러 찾아와. 그리고 취재진. 그래 그래 그 유명한 탤런트도 촬영을 하면서 카레를 먹고 갔지."


공원에서 살다보면 가출한 무일푼 청년이나 파견직에서 짤려 직장을 잃고 방랑하는 여회사원과도 만난다. 그럴때 사토는 그들에게 다가가 종종 상담을 해주고는 한다.


▲ 홈리스의 목숨을 이어주는 공중수돗가


"이 텐트에서 공원을 바라보다 보면 무언가(고민)를 안고 있는 사람을 금방 알 수 있지. 인간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고민을 안고 있지. 그 중에서도 삼시세끼 제대로 못먹는 것은 괴로워."


오후 5시, 사토는 동료의 귀택시간에 맞춰서 조리를 끝낸 두 개의 냄비를 데우기 시작했다.


"좋아, 오늘도 저녁을 먹자구."


오늘 식단은 카레라이스와 고등어 무 조림, 김치다.


"일이 없다고 해서 술독에 빠지면 안 돼. 일을 해야지, 그럼 맛있는 밥이라도 먹여줄테니까. 이 근처 동료는 다들 마르긴 커녕 살이 쩌가니 말이지."


거처에서 쫓겨난 홈리스는 어디로?


길 위의 요리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3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해 봄, 갑자기 사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사토뿐만 아니라 이 공원에 50명정도 있던 홈리스 집단이 파란 방수포 텐트 통째로 홀연히 모습을 감춘 것이다.


▲ 사토의 집이 있던 잡목림


공원관리사무소에 문의하자 예상치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14년 여름, 70년만에 뎅기열 국내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로 전국이 들썩였다. 이후 그 추정진원지인 공원이 있는 신주쿠구는, 뎅기열의 매개인 흰줄숲모기 구제 대응에 쫓기게 되었다. 그 때, 오랫동안 공원을 불법점거하고 무단취식을 하던 이들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공원 청소에 종사한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대화를 통해 스스로 이 공원을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 대화를 거부한 홈리스는 강제로 텐트째로 공원 부지 밖으로 퇴거당하는 '행정대집행'이 적용됐지. 흰줄숲모기 구제라는 명분도 있어서 역시 정부로서는 쫓아내고 싶었겠을테니까. 지금껏 홈리스가 뎅기열에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


어찌됐든 이 공원에서 살던 홈리스는 생활터전을 뺏긴 모양새가 되었다. 사토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휴일마다 찾던 장외마권판매장에도 그 모습은 없었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 공원에서 살던 홈리스 대부분은 생활보호를 신청하고 도내의 여러 간이숙박소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 홈리스의 물건으로 보이는 일용품이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안식처"란?


후생노동성 발표(2015년 4월)에 의하면, 일본의 홈리스는 총 6,541명, 그 중 도쿄도는 1,498명. 이 조사는 각지의 사회복지사무소가 도시공원, 하천, 도로, 역사(驛舍) 등에서 일상생활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눈으로 파악한 숫자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홈리스의 형태는 다양하며, 반드시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찾으려고 캡슐호텔이나 인터넷까페를 전전하는 사람도 있고, 차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연령도 10대부터 80대까지 폭넓다.


홈리스란 그 말이 의미하듯 "집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적당히 살 집을 주고, 생활보호를 받게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사람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 이외의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성립된다.


"食"이란 먹는 기쁨과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괴로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번갈아 인간의 희비가 교차하는 대도시 도쿄의 주변에 맴도는 그 저녁밥 냄새가 그립다. 사토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거리의 어딘가에서 오늘도 동료와 함께 '식부(食夫)'로서 솜씨를 발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1. 국 한 가지와 반찬 세 가지로 된 상차림(일본 식사의 기본적 식단) [본문으로]
  2. 경마에서 100엔당 1만엔 이상의 고배당 마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