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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번역 [ニュース]

한국군의 베트남 대학살 (3) 고엽제전우회와 박근혜의 '언론봉쇄'

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SAPIO 2014년 8월호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이 고엽제전우회와 박근혜에 의한 '언론봉쇄'의 실태다


베트남만행을 폭로한 신문사는 퇴역군인의 쇠파이프로 습격당했다

  

베트남 현지의 명확한 증언과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이제껏 베트남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언급은 금기시 되어 왔다. 그리고 이 금기를 깨는 사람은 폭력이라는 제재가 기다리고 있다. 주로 해병대출신으로 이루어진 통칭 '고엽제전우회'는 지금으로부터 15년전, 베트남에서의 '진실'을 폭로한 한국의 언론사를 습격하여 언론봉쇄를 시도했다. 놀라운 것은 이 폭력조직과 박근혜 대통령이 밀월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무엇을 했는가' 한국 최대의 금기에 도전한 것은 진보언론인 '한겨레'가 발행하는 주간지 '한겨레21'이었다. 1999년 5월, 베트남에 주재하는 구수정 통신원이 보도한 한국군의 '베트남승려학살사건'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 후에도 다른 기자와 베트남참전자와 함께 종종 검증기사가 게재되었다.


그 중 한 부를 요약 발췌했다.


"1969년 10월, 베트남 남부의 린선(Linh Son)사에 나타난 한국군이 비구니(여자 승려)에게 장난을 치려고 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스님이 혼을 내자 한국군은 욱해서 총을 난사하고 승려를 포함한 4명이 살해되었다. 시체는 불태워졌다."[각주:1]


"1966년 11월 9일, 베트남 중부 쾅가이 근교에 있는 마을에 나타난 한국군은 마을 남자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한국군은 13세의 남자 아이에게 뭔가를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남자 아이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한국군은 남자 아이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여자와 아이들의 경우, 한국군에게 사탕과 과자를 받고 안심하고 있을 때 총살당했다."[각주:2]


잇따라 밝혀지는 경악스러운 진실에 한국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러한 일련의 보도에 격노한 것이 베트남참전군인으로 구성된 '고엽제전우회'를 주체로 하는 극우폭력조직이었다.


2000년 6월 27일 오후 2시, 고엽제전우회회원을 중심으로 한 미채색 옷을 입은 남자 2,400명이 쇠파이프와 각목을 한 손에 들고 서울시내에 있는 한겨레 본사를 포위했다. 기동대와 기싸움이 계속되던 중 항의활동은 점차 고조되어 일부 폭주한 사람들이 단숨에 틈을 노려 사옥으로 밀어닥쳤다. 건물에 침입한 그들은 창문유리를 차례로 때려부수고, 컴퓨터와 인쇄기 등 온갖 사무기기를 파괴하고, 16만장에 이르는 서류를 불태우고, 송전을 차단하여 업무를 반나절에 걸쳐 중단시켰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들은 주차장에 있는 두 대의 자동차를 뒤집고 다른 한 대는 방화를 저질렀다. 한겨레 간부는 건물 안에 감금당했고 사원 십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것은 더 이상 항의활동이 아니라 상식을 벗어난 폭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파괴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불과 42명이었다. 신병을 구속당한 사람은 4명뿐이었다.


다음날, 사건을 크게 보도한 언론은 당사자인 '한겨레'와 '중앙일보'뿐이었다. 다른 대형신문사는 조용했고, 오히려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는 사건이 일어난 사흘 뒤 사설에서 '참전용사를 위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며 전우회에게 '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가령 어떤 정치적스탠스에 있다고 하더라도 보도기관이라는 곳이 폭력에 의해 언론탄압을 규탄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엽제전우회란 대체 어떤 단체인가.

 


▲ 한겨레 본사를 습격한 고엽제전우회.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다수의 민간인을 살육한 '청룡부대'출신자도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로, 회원수 약 13만명에 달하는 이 단체는 1993년 3월에 제정된 '베트남참전 고엽제후유의증 환자의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여 설치된 법정단체로 '해병대고엽제전우회'를 모체로 한다. 현재의 명칭으로 바뀐 것은 2000년 4월이지만, 베트남전쟁에서 다수의 민간인을 살육했던 '청룡부대'가 한국해병대 제2사단의 별칭이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엽제전우회의 설립목적에는 '고엽제후유의증 환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지원'외에도 '국민의 부흥 정신을 기르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단체는 평범한 군인출신조직이 아닌 언론봉쇄를 위한 '극우폭력조직'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한 신문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미국의 고엽제제조회사를 상대로 총 3,857억원의 민사소송을 냈습니다. 그 재판에서 일련의 보도가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사를 습격한 겁니다. 고엽제전우회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언론을 봉쇄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데모와 항의활동시에는 쇠파이프와 소화기, 가스통을 휴대하고 대항세력을 위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엽제전우회의 공격대상은 매스미디어뿐만이 아니다. 1992년에 한국에서 개봉된 도쿄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하얀 전쟁'도 맹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은 베트남 참전병의 고뇌를 그려 4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원작 안정효)을 영화화 한 것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장면이 실감나게 재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잔혹한 것은 한국군이 농민 가족을 베트공으로 착각하여 기관소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이다. 어린 아이와 노인이 총에 맞고 쓰러져 그 옆에서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울부짖는다. 한국군은 민간인을 살해한 것을 알고 동요하지만 "어차피 죽일거야. (이 자리에서)죽여!"라는 상관의 명령으로 살아남은 농민을 칼로 무참히 찔러 죽인 뒤, 귀를 잘라갔다.”


이미 베트남에서 취재했던 논픽션작가인 노무라 스스무 타쿠쇼쿠대학 국제학부교수는 영화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으로부터 한국군의 잔학성에 대한 증언을 들은 바 있다.


"베트남 남부의 닝호아현 라콴마을 출신 남성은 열두 살 때 한국군의 급습을 받아 부모와 세 여동생을 잃었습니다. 마을에 찾아 온 한국군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갑자기 총을 난사했다고 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고 있던 노인은 '(한국군은) 죽은 사람의 귀를 잘랐다. 코를 자른 사람, 목을 자른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그렸냈던 것이다. 고엽제전우회는 이 작품을 제작한 감독인 정지영씨에게 집요한 항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정씨는 영화 개봉전과 후에 여러 언론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트남전쟁은 한국현대사의 치부입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거짓된 역사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베트남파병을 모르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을 재검증하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전우회로부터 '왜 한국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거냐'는 항의도 있었지만 전부 사실에 기초하여 만들었기에 무시했습니다."



▲ 항의활동중인 한국군 전역자. 손에 든 가스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퇴역군인 13만명의 희망, 박근혜'

 

이렇게 공갈과 폭력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폭력조직과 강한 끈으로 이어진 사람이 다름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다. 양측의 관계는 2007년 2월 2일, 박근혜의 55번째 생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고엽제전우회본부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박근혜)는 부친인 박정희가 파병을 결정한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베트남참전군인과 고엽제환자가 보내고 계시는 힘든 생활에 무엇 하나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매우 가슴 아픕니다. 제 힘이 닿는데까지 (고엽제전우회)회원의 명예회복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이 되어 '부친의 업적을 정당화하겠다'라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 그래서 보수세력인 고엽제전우회는 큰 지지기반이 되어주었다. 한편 전우회측은 유력한 차기대통령후보인 박근혜와 밀월관계를 가지며 '베트남전쟁의 피해자'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정부로부터 보다 많은 보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속셈이 있었다. 양측의 목적은 이로써 일치됐다.


4년 뒤인 2011년 5월, 서울시내의 호텔에서 열린 '고엽제전우회 14차 정기총회'에서 박근혜는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곳에서 촬영된 사진 속에는 고엽제전우회 회장에게 에스코트를 받으며 미소를 띤 그녀의 모습이 있다. 총회에 참가를 희망한 정치인은 몇 명 더 있었지만 초대받은 것은 다음해에 대통령선거를 앞 두고 있던 그녀뿐이었다. 총회에서는 '퇴역군인 13만명의 희망, 박근혜'라는 가사의 노래를 합창했고, 회장으로부터 "박근혜씨는 우리의 정신적지도자이며 영원한 동지입니다."며 칭찬받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공식석상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관해 언급한 적은 이제껏 단 한번도 없다. 올해 6월 6일 현충일에 열린 국립묘지 세레머니에서도 베트남 전몰자에 관한 발언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부친인 박정희가 시작한 베트남 파병을, 그녀는 정말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고엽제전우회는 홈페이지에 '미국과 남베트남 양 정부가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강원도에 있는 베트남참전기념과의 해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군의 파병은 국가전략이며, 그 제안을 미국이 수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베트남특수로 10억불이나 되는 외화를 손에 넣어 6.25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다시 세웠다.


물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잃고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들과 함께 싸운 자들이 베트남 참전병의 지위향상을 호소하는 것은 뭐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일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의무가 있을 터이다. 본지는 이번 취재로 여러 베트남 참전군인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군에 의한 학살을 묻자 그들은 하나같이 “뭐라고 말하기 힘든 기분이다”라며 확답을 피하며 입을 닫았다.


살아서 돌아 온 이들이 베트남에서의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것은 고엽제전우회와 같은 폭력조직이 아직도 활개를 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지는 앞서 말한 '하얀 전쟁'을 제작한 정지영씨에게 취재를 신청했지만 ‘(취재에는)의미가 없다”라며 거절당했다. 또한 원작자인 안정효씨는 “영화의 학살장면은 픽션이다. 소설에는 귀를 자르는 내용은 없다."며 잘라 말했다. 원작소설에는 분명히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대표작이 된 소설 내용이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본지가 다시 안씨에게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취재를 거부당했다.


최초에 소개했던, 사건의 피해자인 '한겨레'에도 여러 번 취재를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피해자'로 둔갑하여 이익을 탐하려는 극우폭력조직과 베트남전쟁을 '아버지의 공적'으로 만들려는 박근혜는 언론의 입을 막음으로서 '불편한 진실'을 어둠 저편으로 묻어두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