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 인터넷 언론인 iRONNA기사의 번역문입니다.

『帝国の慰安婦』問題に見る韓国の異常な言論空間


며칠 전, 한국에서 부당한 언론탄압을 당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씨의 수기인 <나는 왜 한국에 이겼나>[각주:1]를 읽었다. 읽고 난 감상은, 다른 곳에서 자세히 적었기에 여기서 다시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해서 무서울정도로 야만적이라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최소한의 조건마저 무시한 채 반일을 우선시하는 한국과는 냉정한 논의가 불가능하다.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된다. 일본이 논의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논의를 위한 토대인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 공판준비수속을 위해서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가는 박유하 교수. (사진:교도통신)


가토씨의 수기만으로도 그렇게 확신하기에 충분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한국의 논란을 지켜보더라도 역시 비정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한 박유하 교수는 한국을 업신여기거나 일본을 과하게 찬미하는 인물이 아니다. 위안부의 존재가 한일 양국에서 너무나 큰 차이로 우상화된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비극적인 '성노예'화하여 일본의 우파로부터는 단순히 '매춘부'취급을 받은 '위안부'의 실정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탐구하고, 그런 위안부가 존재했던 구조를 찾아내려는 시도야말로 <제국의 위안부>의 집필의도일 것이다.


양국이 대치하여 우상화된 '위안부 동상'에 대해서, 그것이 허상이라고 주장하고 있기에 결코 단순히 친일파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보수파가 읽으면 화를 낼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박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군인의 성욕을 만족시킬만한 규모의 '군전용위안부'를 생각해 낸 자체에서 군의 문제는 있었다. 위안부문제에서 일본군의 책임은 강제연행의 여부 이전에 그런 '묵인'에 있다." <제국의 위안부> 中


그녀는 결코 일본군, 그리고 대일본제국에 오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측의 주장도 극단적이라면서, 한국인이 애써 외면하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가난한 여성들을 전쟁터로 데려간 것은 주로 조선인과 일본인 업자였다." <제국의 위안부> 中

"정신대와 위안부 동원에 조선인이 깊게 개입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간과되어왔다." <제국의 위안부> 中


요컨대, <제국의 위안부>는 양국에서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위안부 동상'을 되묻고, 본래 위안부란 어떤 존재이며 그런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묻는 내용의 책이지만, 이런 연구가 한국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박교수를 위안부 여성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서울 동부지방법원은 1월13일 9천만원의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월에는 급여를 압류당했다.


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지 허심탄회하게 연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명예훼손당하는 야만적인 현실. 위안부문제의 참된 해결을 방해하는 것은 한일 중 어느 쪽인가인가. 그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한국의 언론공간이 성숙되지 않는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 <a href="http://www.sankei-books.co.jp/m2_books/2016/9784819112741.html">〔産経新聞出版〕 なぜ私は韓国に勝てたか 朴槿惠政権との500日戦争</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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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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