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 인터넷 언론인 iRONNA기사의 번역문입니다.

豪州発 日本人よ目覚めよ! 慰安婦像計画完全阻止を緊急報告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독자도 많겠지만, 호주 시드니 근교에 있는 스트라스필드시에서 지난 8월 11일, 중국・한국계 단체가 요구했던 전시중 '일본군위안부'동상 설치 계획안을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지난해 3월, 느닷없이 튀어나온 위안부동상 설치계획의 찬반을 묻는 시의 공청회 스피치 대결을 우리 AJCN(Australia-Japan Community Network)가 승리하고(실제로는 4월 1일 공청회 전날 밤에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설치반대 연설을 했다. 그 멤버로 결성된 것이 AJCN=당시, JCN), 계획 결정을 연기시키고 나서 16개월이 지났다. 이번 부결이 결정된 다음 날에는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부결을 지지하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 언론이 당초 위안부동상을 설치해야한다는 보도 일색이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정말 커다란 변화다. 지역사회의 융화를 축으로 싸워 온 우리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 증거다.


하지만 위안부동상이 "어떠한 기념물도 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라는 시의 모뉴먼트 폴리시 위반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또, 이 문제가 지역사회를 분열시켜 대립을 만들어내고, 중국・한국계를 포함한 非일본계시민으로부터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졌던 것도 시는 지난해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긴 시간이 소모되어야만 했는가.


▲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한국인 단체의 반일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사진:AJCN)


中韓의 수중에 들어간 시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4년 9월에 시장으로 취임한 자유당소속 줄리안 바카리(Gulian Vaccari)씨가 中韓반일단체에게 유리하도록 시간을 벌어주었기때문이다. 사실 바카리 시장은 "이 문제는 시의 수준을 넘어선 국제문제이며, 시민을 분열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3월에 위안부동상 반대파인 헬렌 맥루카스(Helen McLucas)시의원이 "이 문제가 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명백하기에 신속히 정리하자"고 동의(動議)를 냈을 때, "좀 더 시간을 들여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는 추가 연기를 주장했고, 위안부동상 설치 신청자이며 이해관계자로서 투표가 불가능했던 한국계 옥상두 의원에게 투표를 허가하여 부결되게 만든 장본인이다(여기에 우리는 즉각 항의하여, 해당 의원은 이후 본 건에 관한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심지어 지난 6월, 위안부동상에 관한 주민 의식조사를 실시하는 결정을 했을 때도 "위안부동상에 여성에 대한 가정내폭력반대의 취지도 덧붙이도록"이라며 中韓반일단체의 전술에 따른 방향으로 유도하여 반대파 의원으로부터 맹반발을 받아 철회하는 일까지 있었다. 중립을 가장한 바카리 시장이 中韓측편이라는 사실이 폭로된 순간이었다. 같은 자유당의 스테파니 코코리스(Stephanie Kokkolis)의원과, 부시장 자리를 주는 대신 바카리씨를 지지하도록 움직였던 무소속 앤드류 술러스(Andrew Soulos)의원은 완전히 바카리 시장을 추종했다. 바카리 시장이 시장에 부여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 강행채결도 가능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나서지 않고 시간을 벌어가며 적절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작전으로 보였다.


구실 찾기


2014년 4월, 당시 다니엘 보트(Daniel Bott)시장은 "이 문제는 시의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와 연방 장관에게 조언을 요구했다. 상위자 중 누군가, 특히 애벗 총리가 "이런 짓은 그만둬라"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랬다면 中韓의 선거민을 상대로 구실이 생긴다. 하지만 애벗 총리와 비숍 외무장관을 시작으로 전원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의 문제다"라며 회피했다. 누구도 불 속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것은 우리에게는 판단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다"라며 파기해야했지만 그것 조차 못한 채 9월에 바카리 시장으로 교체되었다. 이 문제는 계속 헤메는 상태였다. 모두가 구실을 찾고 있었다.


가장 양식적인 맥루카스 의원은, 일찍부터 시민에게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스트라스필드의 대다수 시민은 위안부동상에 반대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질문의 내용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우리는 질문내용을 사전에 밝히도록 수차례 요청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 반대파인 서양인 남성이 직접 바카리 시장에게 물어보자 "여론조사결과 찬성이 다수라면 위안부동상을 세울 생각이다. 조사가 언제 시작될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예감은 적중한다.


악의적인 전화 조사


시내에 살고 있는 AJCN 일본인 멤버에게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왔다는 소식은 바로 그 직후였다. "위안부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길래 "아니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자 "일본군은 제2차세계대전중 20만~36만명의 여성을 납치하여 매춘을 강요했습니다. 中韓계 커뮤니티가 위안부동상을 세울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만 당신은 찬성합니까?"라고 질문을 받아 남성이 "반대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왜죠?"라고 다시 물었다고 한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유도질문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즉각 서양인 멤버가 시 행정측에 항의전화를 걸어 재차 질문내용 제시를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시의 여성직원은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라고 대답하며 멤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시는 우리의 수차례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며, 약속기한보다 한참 늦게 질문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앞서 말한 유도질문의 숫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또, 계속되는 멤버의 질문에 대해서 시의 여론조사 책임자로부터, 앞서 밝힌 편향된 설명내용은 반일조직으로부터 제공받은 일방적인 정보에 기초했다는 답변을 얻었다. 두번째 조사 내용에는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은 시, 주, 연방 중 어느 수준의 정부라고 생각합니까?"와 같은 질문도 추가되어 있었다. 일주일 후쯤 다른 일본인 집에도 전화가 걸려 왔다. 이 때 질문은 고시된 내용에 가까웠다고 한다. 황급히 설명과 질문을 교체했을 가능성이 있다.


▲ 시드니한인회 송석준 회장이 Gulian Vaccari 스트라스필드 前시장(가운데), Brian Robson 켄테베리 시장(왼쪽)과 일식레스토랑에서 위안부소녀상건립 지지를 부탁하며 서류를 건넸다. (사진:호주시드니한인회)


中韓반일단체 최후의 공격과 시장의 의도


7월 7일, 맥루카스 의원이 재차 문제의 결착을 촉구하는 動議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9월에는 시장선거가 열린다. 자신의 임기중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바카리 시장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8월 11일에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표결 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맥루카스 의원의 동의는 어디까지나 위안부동상 설치 부결이 목적이었지만 中韓반일단체는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세를 시작했다. 그들은 스트라스필드 역 앞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전단지 배포 등 캠페인을 시작했다.


中韓반일단체의 전략은 명확했다. 커다란 현수막에 "전시와 평시의 여성폭력에 반대한다(Stop Violence against women during war time and peace time)"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펄럭였다. 그 아래에 작게 "호주에서는 매년 55명 이상의 여성이 가정내폭력으로 죽어간다.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20만명이 넘는 여성이 이른바 위안부라 불리며 성노예가 되었다"고 쓰여있다. 다시말해서 억지로 위안부문제를 오늘날 가정내폭력으로 연결지어 여성의 인권전반의 문제로 탈바꿈함으로서 폭넓은 지지를 얻으려는 꿍꿍이다. 그리고 통행인에게 서명을 요구함과 함께 다른 인쇄물을 건네준다. 거기에는 "세자매(three sisters)"라고 이름 붙여진 위안부동상 스케치가 인쇄되어 있고, "제2차세계대전도중 20만명이 넘는 아시아인과 네덜란드인 여성이 일본제국육군에게 인권침해를 당했습니다. 이 동상을 세우면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는데 일조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쓰여있다. 동상의 세자매는 중국인, 한국인, 호주인 여성이어야하지만 거기에는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감시해 온 시드니 한국인모임 홈페이지에 반일단체리더의 흥분된 코멘트가 눈에 띄었다. "8월11일은 5대5 스피치가 열리게 되었다! 외부로부터 학살연구자와, 여성인권활동가를 초빙하자!" ... 다시 스피치 대결을 하자는건가? 명백히 시의회의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고 있다. 한국계 시의원인가, 바카리 시장인가?


AJCN부대표인 대런이 바카리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묻자, 시장은 우스꽝스런 말을 했다. "스피치는 (찬성과 반대)각각 4명씩인지 8명씩인지 알 수 없다. 외부로부터도 환영이다. 외부인이 이런 경위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꼭 듣고 싶다. 자네 목소리가 불안한 것 같은데? 걱정할 것 없어. 우리도 아직 찬반을 결정하지 못했어. 당일 결정할 생각이야!"


이걸로 바카리 시장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를 여성인권문제로 바꿔치기한 반일단체의 방침은 주민의식조사 실시를 결정했을 때 시의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침에 입각한 반일단체의 역 앞 캠페인을 묵인하고 수차례 공청회를 열고 나서 많은 사람에게 연설참가를 독려한다. 특히, 인권활동가 등 외부 연설가 참가를 허용하여 여성의 인권문제로 포장하여 가결을 노린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강행채결하지 않아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것처럼 보인다.


내가 시에게, 가정내폭력과 연결지었던 캠페인은 당초의 취지와 다른 기만이라는 사실, 16개월을 지나 공청회를 개최하는 모순, 외부인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했음에도 비거주민의 연설을 허용하는 모순 등을 지적한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대항서사(counter narrative)를 만들어라!


멤버들 사이에 스피치 준비를 시작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마오카(필자)씨는 이미 머리속에 구상이 끝나지 않았나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스피치는 누구보다 자신있습니다다. 하지만 이대로 상대방이 준비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스피치를 듣고 나서 의사를 결정하는 의원은 없을겁니다. 결전 포인트를 훨씬 이전에 설정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결된다고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투쟁을 해나갈 것이다'라는 것을 시와 시의회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주고 나서 투표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다시말해서 대항서사(counter narrative)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우리가 커뮤니티 융화의 소중함을 호소하는데 반해 상대방은 위안부문제를 '가정내폭력을 포함한 모든 여성인권문제'로 바꿔치기하려는 작전을 들고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층 나아간 내러티브(이야기)를 준비하여 상대의 모순을 폭로해야 한다. 구상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주식 1부상장기업 해외사업통괄을 맡았던 에가와 사무국장이, 오전 3시반에 갑자기 일어나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 시드니 한인회 사이트를 빠짐없이 체크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관심조차 없던 한글로 쓰여진 게시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글로 번역하여 내게 보내주었다. 나는 중요한 부분을 한국연구자에게 부탁하여 면밀히 번역했다. 거기서 반일단체 리더의 속내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일본인도 살고 있는 이 곳 스트라스필드에서 절대, 두 번 다시 일본인에게 지지않는다. 우리는 반성없는 그들을,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신조의 일본인들을 격파하고,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짐승같은 역사를 종결시킬 것이다. 20만명의 위안부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리고 외국에게 지배당해온 끔찍하고 슬픈 한반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


한마디로 일본정권비판을 뛰어 넘어, 위안부동상에 반대하는 일본계 주민마저도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반성 없는 적"으로서 "격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진짜 동기와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반일단체의 역 앞 캠페인 시작 당일, 바카리 시장이 위안부동상 추진 책자를 배포한 반일단체대표와 일식레스토랑에서 환담을 하는 사진까지 실려있다. 바카리 시장은 우리의 메일이나 편지에 대해서 단 한번의 답변도 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바카리 시장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시장에게 적용되는 행동강령(code of conduct)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반일단체리더의 인터넷 게시물은 법률로 금지되어있는 타민족을 향한 비방중상에 해당된다.


만약, 시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위안부동상설치를 허가한다면 그 순간 시는 이러한 행위를 용인한 것이며, 스스로 가해자를 자청한 것이다. 시에게 보낼 최후통첩 작성은 에가와 사무국장과 법조계에 인맥이 있는 Rika씨에게 맡겼다. 서두른 이유는 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훌륭하고 신속한 일이었다. 화살은 정확하고 조용히 쏘아졌다. 그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모든 멤버에게 통보했다. "자, 스피치 준비를 합시다!"


시의 책임회피


시의 행정측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불과 며칠뒤, 권고(Recommendation)이라는 형태로 시의 인식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시의 웹사이트에 게재되었을뿐만 아니라, 지역신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맨 뒤 페이지에는 일부러 일본어와 한국어 번역까지 싣는 철저함을 보였다. 위안부동상이 얼마나 시의 모뉴먼트 폴리시에 반하는지 16항목에 걸쳐서 상세히 기술하고 시민 여론조사에서도 33%밖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써 있다(33%는 너무 높아 보인다. 유도심문의 영향일까? 해설이 전혀 없는 것이 수상하다). 따라서, 시 행정측은 시의회에 대해서 더 이상 위안부 동상에 관하여 심의하지 않을 것을 장려한다고 결론지었다. 막판에 시는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 위안부동상이 가결되어 법률에 저촉되는 사태가 있더라도 자신들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소리 높여 선언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시의회가 위안부동상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효과는 있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정의나 이념이 아닌 保身이었다. 위안부동상이 시의 폴리시에 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에가와 사무국장이 이렇게 말했다. "이런데도 그들(반일단체)이 나설까요?" 내가 말했다. "그들은 반드시 대항할 겁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실 회장은 당일 일본계 약 100명, 中韓을 비롯한 기타 약 200명을 합해 꽉 들어찬다.


시는 결국 4대4 스피치 대결을 통보해 왔다. 스피치 희망자는 당일 아침, 공개추첨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지난해와 달리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4개의 스피치를 준비하여 연설자를 등록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드라마가 남아있었다.


8월 11일 오전 9시반, 에가와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추첨이 끝났습니다. AJCN에서 한 사람밖에 넣지 않았습니다. 다른 3명은 외부인입니다!" 놀랍게도 위안부동상 반대파는 우리 이외에도 4명이 응모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中韓측은 4명만 응모했고 그대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AJCN에서 선발된 것은 가장 중요한 대런이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른 3명의 외부인이 응모한 것에 놀랐다. 브라이언이라는 서양인 남성은 사전에 독자적으로 응모해도 되는지 문의해 왔기에 예상은 했었다. 다른 한 사람인 일본인여성은 완전히 예상밖이었지만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정의감에서 응모했지만 아직 원고는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은 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백인남성이었지만, 이 사람도 네트워크를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무려 스트라스필드에서 수십년이나 살아 온 장로로 부친은 前시장이었다. 경건한 기독교인으로 위안부동상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한다. 천우신조라고 할 만한 원군이었다.


상대측 연설자에 대해서 즉각 조사했다. 예상대로 유대인 홀로코스트 연구자와 그리스인 제노사이드 연구자가 포함되어있다. 위안부문제를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와 연결지으려는 속셈은 너무나 뻔했다. 다른 두 사람은 중국인과 한국인단체의 대표로 보였다.


나는 차를 타고 브라이언을 만나러 갔다. 그가 스피치를 통해 위안부문제는 홀로코스트와 전혀 유사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해 주기를 바래서였다. 그는 미소지으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 스트라스필드에 화합과 평화는 커녕 분열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호주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옥상두(62, 한국계) 시장. (사진:뉴스천지)


운명의 스피치


오후 6시 30분, 시의회 특별회가 시작되었다. 브라이언은 우연히도 첫번째 연설자로 뽑혀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각주:1]를 소개하며 다음 차례의 홀로코스트 연구자의 연설을 무효화했다.


두번째 연설자인 대런은 지역민으로서, 모든 이민은 호주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자국의 분쟁을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일단체는 이 지역의 중국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라는 중국계주민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中韓측의 제노사이드 연구자이자 대학강사는, "위안부는 매춘부가 아니라 노예였다. 고노 요헤이가 인정했다. IS는 소녀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있기에 위안부동상은 그 상징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지만 스트라스필드에 세워질 필요성은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파인 스트라스필드의 장로, 제프 보이스씨는 고령임에도 쥐어짜는듯한 목소리로 의연하게 발언했다. "이곳은 오스트레일리아다. 중국이나 한국, 미국의 일부가 아니다. 모두 호주인이다." 명연설이었다.


중국계 대표 남성은 중화계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명사였지만 전쟁에 관한 남성의 동상이 있으니 여성동상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 다음 반대파 연설자는 예상밖이었던 일본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준비한 원고를 받아 읽었다. 나는 일부러 이 문제는 중국이 미국-일본-호주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한 정보전의 일환이며, 위안부동상을 세우는 것은 호주의 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을 포함시켰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당당하게 연설했다. 덕분에 다음날 신문에서는 이 문제에서 가장 먼저 안전보장에 대한 관점을 실었다.


그리고 한국의 마지막 연설자는 20대초반으로 보이는 용모가 빼어난 여성이었다. 미니스커트와 높이 10cm는 넘어 보이는 하이힐. 연설자석에 앉자마자 다리를 꼰채, 펜으로 시의회를 가리키면서, 강한 한국어 악센트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같은 젊은 딸들이 강간당하며 살해당했다는 사실 아세요? 그러니 위안부동상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측은 그녀를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으로 만들 계획이었을까?


한국계 옥상두 의원은 자신이 이해관계자임을 선언하며 퇴장했고, 시장을 포함한 6명 만장일치로 위안부설치는 부결되었다. 바카리 시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다는 듯 담담히 부결에 찬성했다. 회의장에 반일단체리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관철해 나간 비적대적 합리주의


16개월에 걸친 장기전을 거쳐서 너무도 지당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AJCN이라는 일본-호주혼성팀을 만들어 中韓반일단체 vs 모든 주민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싸웠고, 승리했다. 지역주민에서 前주재원까지 본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일치단결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이 얼마나 횡포하고 비열하더라도 품격을 갖추고 이지적으로 행동하여 지역사회의 평화와 융화, 그리고 엄마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설립이념(비적대적 합리주의)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 이념에 공감하는 사람만 참가했기에 분열도 없었다. 또 대조적으로 반일단체의 폭력성을 돋보이게 함으로서, 양식있는 시의회의원과 일반시민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반일단체를 논파하려하지 않고 양식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또 한 편으로 우리는, 결코 상대방 링에 올라가 싸우려 하지 않았다. 항상 대항서사를 만들어 상대의 자책골을 유발했다. 비적대적이고 신사적이라는 것은 나약함을 뜻하지 않는다. 반대로 공격은 강함을 뜻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공격을 그대로 이용하여 되받아치는 합리성과 전략성이야말로 강함의 원천이다. 목적은 위안부동상을 세우지 않는 것, 그 한 곳에 집중하여 다원적인 논점을 만들어냈고 역사인식론만으로 싸우지 않았다(방위이원론). 실제로 내가 가장 노력을 쏟은 것은 논쟁이 아닌 적재적소에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는 조직운영이었다. AJCN의 활동을 보완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인재와 단체로부터도 협력을 얻었다. 위안부동상 설치안이 만장일치로 부결된 날 밤. 한국계 옥상두의원이 언론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 "中韓의 협업은 훌륭했지만 일본의 조직적방해에 막혔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조직도 자금도 없다. 가진 것이라곤 양식이라는 원동력과 개개인이 전략에 따라서 장점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유연한 네트워크뿐이다.


일본인에게 보내는 wake-up call


이것은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민주주의란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싸울 수단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배웠다. 자존자위의 결의없는 정의는 울타리 없는 꽃밭처럼 무참히 짓밟혀 버리는 숙명이라는 것을 통감했다. 상대의 선의에 자신의 안전을 맡긴다면 목숨이 열개가 있더라도 부족하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8월 16일 일요일, 이제껏 반일기사가 많았던 유력신문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위안부동상이 만장일치로 부결된 소식과 함께, 中韓반일단체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강조된 기사가 실렸다. 흐름은 뒤집혔다. 하면 된다. 우리가 시드니 모델이라고 불릴만한 수법으로 승리했다는 소식은 이곳 남반구에서 세계의 모든 일본인에게 보내는 wake-up call이다. 이 자리를 빌어 지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1. <a href="https://ja.wikipedia.org/wiki/%E6%9D%89%E5%8E%9F%E5%8D%83%E7%95%9D">〔Wikipedia〕 일본의 외교관.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에게 박해를 받아 도망친 난민을 위해 대량의 비자를 발급하여 약 6천명을 도왔다. 피난민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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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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