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SAPIO 2016년 3월호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라는 합의를 발표했다. (사진:MBC)


한국은 합의를 지키는 나라인가?


위안부, 징용공, 다케시마(독도)

약속을 깨는 "한국, 배반의 역사"


한국의 대일외교를 되돌아보면, 일본에 다가가는척하면서 뒤집는 '배반의 역사'다. 국교정상화 이후 반세기. 일본을 가지고 논 한국을, 구로다 가쓰히로가 일갈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국제관계에 있어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언론과 유식자의 논평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 말에는 항상 위화감을 느낀다.


국제정치에는 그런 측면이 있고,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당당하게 입에서 내뱉을게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한국인은 동맹관계에서도 우호관계에서도 결국 상대방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상대방은 언제 배신당할지 모른다고 경계할 것이다.


한국(한반도)은 아시아대륙에 매달린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환경으로 인해서 생존을 위해 주변국과 속고 속이는 '줄타기 외교'를 펼쳐왔다. 그 역사적 경험이 저렇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외교적으로 뛰어나고, 나쁘게 말하면 국제적으로 보면 교활하다는 것이다. 북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이런 한국에게 휘둘려왔다. 이 글에서는, 근대사는 제쳐두고 전후 한일관계에에 초점을 맞춰서 뒤돌아 보겠지만, 그 역사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對日배반의 역사'였다.


국가간 외교관계를 다루기 전에, 민간에서의 최근 對日 배신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일본의 지원과 협력으로 탄생하여 한일협력의 최대성공사례로 일컫는 한국경제발전의 상징 'POSCO'의 일본에 대한 배신이다.


POSCO는 현재 세계적규모의 철강 기업이지만, 그 아버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일본제철(현재는 '신일철주금')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소송이 벌어져 지난해 손해배상으로 300억엔이나 되는 화해금을 신일철주금에 지불했다.


문제가 된 것은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강판'의 최첨단 기술로, 신일철주금의 퇴직자로부터 불법으로 입수하여 자사기술로서 생산했다. 산업스파이 사건인 것이다. 신일철주금쪽에서 보면 "기르던 개에게 물린 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POSCO측이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때문에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또, 재작년에는 서울 롯데호텔이 일본대사관의 '자위대창설 60주년기념 리셉션'이라는 외교행사장을 직전에 취소하기도 했다.


한국언론의 반일보도에 겁먹은 결과지만 일본계로서 일본정부가 자주 이용하던 호텔이었만큼 그 일본에 대한 '배신'이 화제가 되었다.


▲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직접 방문한 모습.


조약조차 지키지 않는다


전후 한일간 최대 '배신'은 1965년 국교정상화조약 무시일 것이다. 특히 과거의 재산과 권리에 관련된 '보상'에 관해서 조약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라고 선언했음(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위안부문제와 징용공문제를 꺼내들어 보상을 요구하며 계속 문제삼아왔다.


위안부문제는 지난해 말 합의를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이라고 발표했지만, 조약조차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고나면 합의발표라는 '구두합의'를 무시하는 것쯤은 간단할 것이다.


한국(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 통치는 식민지지배라고 불리지만 국제적으로 '식민지 보상'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고 전례도 없다. 한국의 당국자는 당시 어떤 명목으로 일본으로부터 지원을 받을지 고뇌했다고 밝혔다(구로다 가쓰히로 著, <韓国人の歴史観> 참조).


결과적으로 일본은 '청구권자금'명목으로 5억불을 한국에게 제공했다. 교섭과정에서 일본측은 개인보상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한국측은 "국가가 대신 받는다. 개인보상은 한국정부가 책임진다."라고하여 그렇게 되었다. 따라서, 그 후 개인보상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에게 요구하라."고 하면 될 것을, 한국은 비겁하게도 이 사실을 한국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고 일본정부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사할린 잔류 한국인 지원 요구에 대해서는 협정과 별개로 '인도지원'으로서 상당한 자금을 제공했다. 여기서 위안부에 관해서도 인도 지원으로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형태로 자금을 마련했지만, 한국 정부는 "인도지원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위안부지원단체의 반일강경론에 밀려서 일본에게 또 요구하고 나섰다.


다케시마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교정상화를 통해 "미해결의 해결"이라는 보류와 현상유지에 합의했다(노 다니엘 著, <독도 밀약> 참조). 말하자면 '조용한 외교'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김영삼 정권은 섬에 부두를 지어 현상변경을 강행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은 민간인의 왕래를 자유화하여 섬을 관광지로 만들고 이명박 정권이 되자 대통령 스스로 섬에 상륙했다.


일본을 위한 외교적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외교적 배신의 연속이다.


이명박 정권때는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서명 1시간전에 한국측이 중지를 선언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국내에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쏟아져 뒷걸음질 친 전대미문의 외교적 배신이었다.


▲ 김대중 대통령은 도쿄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확대 정상회담 가진 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협정문에 서명했다. (사진:대통령기록관)


김대중마저 배신하다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고 알려진 그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마지막에는 교과서문제를 꺼내들며 반일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하여 오부치 케이조 총리와 일본의 명확한 사죄와 보상을 담은 한일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직접 "이걸로 과거는 청산되었다", "더 이상 과거가 외교문제가 될 일은 없다"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본에서 <中学・新しい歴史教科書(중학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에 대해 일본의 반대운동과 발을 맞춰서, 일본정부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며 35항목 기술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다양한 교과서가 인정받는 일본의 교과서제도에 대한 간섭이었다. "과거는 외교문제화하지 않는다."라는 대일약속을 무시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역사왜곡'이라며 꼬리표 달기로 반일감정을 선동했던 언론과 영합하여 일본을 배신한 것이다.


이번 위안부문제합의에 대해서 야당 진영은 '굴욕외교'라며 하루빨리 파기와 재협상을 부르짖고 있다. 2년 뒤 그 야당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은 50%다. 현재 야당의 체질을 볼 때 정권을 쥐게 될 경우, 반일정서와 영합하여 애국퍼포먼스로 "새로운 배신"을 저지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씁쓸한 이번 합의에는 미국정부와 UN사무총장, 그리고 미국의 재미한국인과 함께 '위안부 반일'을 주도해 온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환영과 지지를 표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한국의 '배신봉쇄'로 이용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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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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