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SAPIO 2016년 3월호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대담을 나누는 지한파 작가 이자와 모토히코(좌)와 가토 다쓰야(우) 산케이신문 前서울지국장. (사진:NEWSポストセブン)


[긴급대담] 이자와 모토히코 × 가토 다쓰야


박근혜정권과의 "500일 전쟁"으로 알게 된 위안부 "한일합의"의 행방


무려 500일, 게재한 칼럼기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기소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前서울지국장은, 17개월동안 법정투쟁을 벌였다. 지난해말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기자의 일과 박근혜 정권과의 "500일 전쟁"을 통해 한국을 '체감'한 가토씨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합의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을 지켜 봐 온 작가 이자와 모토히코씨도 "다시 뒤집히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을 주제로 두 사람이 한일관계의 행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자와(이하 '이')─ (한국에서)많이 힘드셨을텐데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선 사건을 정리해 주시죠. 한국의 유력신문인 조선일보가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남성과 만났다는 소문을 근거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가토씨는 이 기사를 인용하여 칼럼을 썼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박대통령을 명예훼손했다며 기소한 것은 가토씨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인 조선일보는 책임을 묻지 않았죠. 먼저 그 부분이 이해가 안됩니다.


가토(이하 '가')─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권과 가까운 관계니까 검찰로서도 떼어놓고 싶었을 겁니다. 또 하나는 제 칼럼을 무단으로 한국어로 번역한 <뉴스프로>라는 매체도 동시에 고발당했습니다. 뉴스프로는 해외언론의 박근혜 정권 비판 뉴스를 번역하는 한국의 인터넷매체입니다. 하지만 한 번 수사를 했을뿐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이─ 한마디로 '일본인이'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괘씸하다는 거군요. 이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얼마동안이나 출국금지조치를 당하셨나요?


가─ 약 8개월입니다. 처음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것이 2014년 8월 7일이었습니다. 계속 연장되어 해제된 것이 2015년 4월 14일입니다.


식사중에도 감시당했다


이─ 생활과 이동은 자유로웠나요?


가─ 그건 그랬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감시당했습니다. 사실 한국정부는 출국금지에 관해서 저에게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이틀 뒤 저녁, 이런 사실도 모른채 서울에서 일본대사관 간부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짐이를 먹고 있었는데, 주위에 있던 페어시트 중 한 일행은 커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자주 바뀌고 거동이 이상했습니다. 아마도 검찰당국이 아닌 정보기관 소속이 저의 동향을 파악하고 청와대측에 보고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식사 도중에 일본의 언론 기자로부터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가토씨, 출국금지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사실인가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출국금지를 본인에게 전하지도 않은 것은 정말 어이가 없군요. 감시는 계속 당하셨나요?


가─ 그것도 제멋대로라서 감시당하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매일 감시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전해듣기로는 고령의 모친 병문안때문에 출국을 허락받았다는데.


가─ 여기에는 한국의 종특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국인특파원인 저에게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이후, 서방언론은 한국의 대응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문제도 있었으니 당연하겠죠.


가─ 국제여론이 높아지면서 박근혜 정권은 '저'라는 '짐'을 계속 지고 가는 것이 힘들어진 겁니다. 정권내에서 "가토를 출국시킬 방법은 없는가"라는 움직임이 나온겁니다. 그러나 체면때문에 쉽게 출국을 허가할 수 없는 거죠. 기소를 취하하는건 당치도 않았을테고. 출국을 허락하기 위해서 한국 국내용 변명이 필요했던거죠. 어느 날, 검찰이 제 변호사를 통해서 "어떻게든 일본에 귀국할만한 사정은 없나"라고 타진해왔습니다. 일본에서 일을 해야한다고 전하자 "그 정도 이유로는 안된다"라더군요. 다음으로 "당신 친인척 상황은 어떤가?"라고 물어왔습니다. "84세의 모친은 지금은 건강하지만 무릎이 종종 편찮으시다"라고 말하자 한국정부는 적당히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 "'나쁜놈 가토'도 모친에 대한 정을 버리기 힘들어 효도를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출국을 허락하자."라는 거군요(웃음). 한국은 부모를 공경하는 '효'를 제일로 하는 유교사회니까 이거라면 국내용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겠군요.


가─ 한국은 건전을 중시해서 무슨 일이든 거드름피우는 나라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 한국 국내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이재우/AFLO)


무죄판결문의 85%가 매리잡언(罵詈雜言)


이─ 법원은 판결 공판 일정을 지난해 11월 26일에서 12월 17일로 연기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측으로부터 "반성의 빛을 보여라"라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던데.


가─ 그런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국정부의 뜻을 전해 받은 일본의 정치인들이 산케이신문사 사장에게 면회를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죄는 못한다 하더라도 산케이신문으로서 유감의 뜻을 밝히면 좋겠다. 그럼 한국측도 치켜든 주먹을 내릴 것이다"라는 움직임이었죠.


이─ 하지만 가토씨나 산케이신문사나 "유감의 뜻"이나 "개전의 정"은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한국은 "거봐, 가토는 역시 나쁜 놈이었어"라는 논의를 내세우며, 언론의 자유는 지켜지지 못했을 테죠. 판결에서 가토씨는 3시간동안 서있어야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법원에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보여집니까?


가─ 한국에서는 임신중이나 고령 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 판결은 서서 듣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판결문 낭독은 수 초에서 수십 분 정도입니다. 3시간은 이례적이었죠. 1시간 40분정도 지났을 즈음 변호사가 판사에게 "피고인을 착석시켜도 되겠습니까"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판사는 첫 공판 때 "이 재판은 룰대로 진행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분명, 나중에 "룰대로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노림수가 있었을 겁니다. 판결이 길어진 이유는 판사가 낭독한 판결문 가운데 85%가 "산케이신문의 보도가 심했다", "가토라는 기자는 제대로 취재도 하지 않았다"라는 헐뜯기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국민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일본의 독자를 향해서 한국의 정치, 사회상황을 전하는 기사인 것은 분명하기에 죄는 묻지 않는다"라고 겨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마지막 10%정도의 결론만으로 충분함에도 85%를 제거하면 "친일파 판사다"라고 비난받을테니까 그런 판결을 내린 거군요.


가─ 한국언론의 보도도 판결과 마찬가지로 "산케이신문의 가토는 어처구니없는 기자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나서 "검찰은 국제사회에 수치를 드러냈다"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문화의 "황금비"일지도 모르겠군요.


가토 前서울지국장 무죄판결까지의 법정투쟁 500일


2014년

  • 8월 3일 - 산케이신문 웹사이트에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됨.
  • 8월 7일 - 출국금지처분 결정(그 후 8번 연장).
  • 8월 18일 - 서울중앙지검이 가토씨를 조사.
  • 9월 30일 - 가토씨 변호인, 출국금지해제요청서를 제출(거부됨).
  • 10월 1일 - 산케이신문이 가토씨에게 도쿄본사근무로 발령.
  • 10월 7일 - 한국의 보수단체 100명이 서울지국 앞에서 항의집회.
  • 10월 8일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불구속 기소.
  • 11월 27일 - 첫 공판. 보수단체가 가토씨가 탑승한 차량을 향해 통행을 방해하며 계란을 투척함.


2015년

  • 3월 30일 - 제5회 공판. 판사가 "박대통령의 밀회설"은 허위라는 견해를 나타냄.
  • 4월 14일 - 출국금지해제, 가토씨가 귀국.
  • 10월 19일 - 제10회 공판, 결심.
  • 12월 17일 - 무죄 판결.
  • 12월 22일 - 서울중앙지검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 무죄 확정.


불리하다 싶으면 합의를 뒤집는 나라


이─ 가토씨의 무죄 판결과 연말의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합의는 양국관계의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흐름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하지만, 이미 한국정부는 민간단체가 설치한 것이라며 일본대사관앞 위안부동상은 철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걸 정말 합의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가─ 동감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철거할 수 없는 경우의 핑계를 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안부 동상이 철거되지 않으면 일본정부는 위안부지원을 위한 10억엔을 내지 않을 겁니다.


이─ 한국이 위안부동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일본은 10억엔을 내지 않는다. 그럼 한국은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라고 책임을 묻겠군요.


가─ 단, 박근혜 정권이 계속되는 앞으로 2년간, 지금처럼 고자질외교를 하거나, 위안부문제를 뒤집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한국정부는 연초에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한일합의에 반대하는 무신고 데모에 참가했던 대학생을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사관앞 위안부문제의 데모는 성역이었는데 어지간히 과격한 항의행동이 아니라면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이─ 어떤 의미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받는 나라"였군요(웃음).


가─ 그렇습니다. 단,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이후는 상황이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안부문제를 명분으로 반일여론을 만들고 있는 정대협이 한일합의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대협이 지금처럼 힘을 가질 경우, 2년 뒤에 탄생하는 새 정권이 박근혜 정권의 합의에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 그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일본은 상당히 양보해서 위안부에게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담화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위안부문제를 뒤집지 않겠다는 언질을 받은거군요.


가─ 하지만 아쉽게도 효과는 없다고 봅니다.


이─ 그렇다면 양보까지해서 얻은 합의의 의미가 사라지겠죠. 일본의 책임을 묻게될뿐만 아니라, 한국에게도 마이너스입니다. 합의를 뒤집으면 체면을 구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테고.


가─ 그 부분은 일본정부로서도 골치아픈 문제겠지요. 하지만 올해는 미국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2년 뒤에는 박근혜 정권도 바뀝니다. 그렇게되면 모두 前정권이 한 일이라며 약속을 깰지도 모릅니다. "골대가 움직인다(moving goal posts)"라고 야유받듯이 한국정부는 지금껏 불리하다 싶으면 합의를 뒤집어서 타협점을 바꿔왔습니다. 외교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새 대통령이 합의를 깨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겠죠. 그리고 국제사회는 한국이 근대법치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나라라고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장래적으로는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여집니다.


가─ 저는 이자와씨가 우려하는 부분이나 제가 기소당한 사건이나 그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에서는 국가지도자의 감정에 따라서 對日방침이 결정됩니다. 북한도 그렇습니다만 지도자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북한에서는 목숨을, 한국에서는 정치적・학문적 생명을 앗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고 해도 국민감정을 등진 지도자에게 거역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가토씨의 사건으로 새삼 느꼈습니다만 한국에는 지금도 언론의 자유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가 고문서 자료를 세세하게 조사하여 "한국의 전후교육에서는 일본의 식민지시대에 수탈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주장하자 언론에게 철저하게 짓밟혔습니다. 작가인 김완섭씨는 일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글을 쓰자 체포당하고, 책이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재작년에는 <제국의 위안부>를 쓴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도 위안부를 명예훼손했다며 고발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증거에 기초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가─ 저도 시대의 권력이 허용한 틀 속에서 연구와 보도활동이 불가능한 꽉 막힌 사회라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이─ 그 최대 원인이자 한국의 커다란 과오가, 전후 국민을 단결시키기는 슬로건으로 반일을 내건 일입니다. 그들은 국내의 모순을 반일감정에 맡깁니다. 그러면 역사의 사실인식이 달라지죠.


가─ 십수년전, 저는 회사명령으로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통역지망 여학생들이 저를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전시관에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일본통치시대가 얼마나 참혹했는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그 유명한 "일본인 속죄시키기" 투어군요.


가─ 그렇습니다(쓴웃음). "그걸 본 일본인은 대부분 사죄한다"라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저는 "이것을 당당히 전시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녀들은 "전시되어 있는 사실이 진실이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문제될게 아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 저는, 자기중심적이고 이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주자학의 영향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보다도 "한국에게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가 중요하기에 엉터리 전시물을 허용하는거겠죠. 가토씨는 그런 한국으로 인해 고생하셨습니다만 앞으로도 한국취재를 하실 생각인가요?


가─ 현재는 도쿄본사 사회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회사명령이라면 물론 계속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을 거부당할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출국금지를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나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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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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