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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번역 [ニュース]

세계유산은 어째서 정치문제로 발전했는가

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Newsweek 일본판 2015년 7월 28일자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유네스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인류의 역사유산을 평가하는 자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한국 로비 실태와 '不戰(싸우지 않는)'외무성의 내막을 대표단 일원이 말하다.


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0년 넘게 수많은 지자체와 시민, 국내외 산업고고학자와 함께 이 날을 위해 달려왔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산업유산이 지역의 자원으로 각광받게 된다. 지역 주민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역사적 순간에 환희하면서도 뒷끝이 찜찜해졌다. ICOMOS의 등록권고를 받으면서 일본은 한국이 세계유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회의에서 등록이 결정되는 순간 모래를 씹는 기분을 맛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는 16년간 등록을 목표로 함께 노력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스러웠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등록을 목표로 해 온 일본정부는 7월 2일,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독일 본에서 다년간 산업유산에 오랫동안 힘써 온 도시경제평론가인 가토 코코씨를 내각관방참여로 임명했다. 故가토 무쓰키의 장녀인 가토 코코씨는 산업유능연구의 권위자로 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의 전무이사와 쓰쿠바대학 객원교수를 역임중이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은 8개 현[각주:1], 11개 시[각주:2]에 위치한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급속한 산업화를 말해주는 유산群이다. 20세기 초, 일본은 비서양국가 중 최초로 공업대국의 토대를 구축하고 조선, 제철, 제강, 석탄 등 중공업분야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이뤄냈다. 1853년, 미국해군동인도함대의 우라가 내항에 호응하여 에도막부는 약 2세기동안 이어져 온 대선(大船)건조를 해금했다. 諸藩은 해안 방어의 위기감에서 반사로(反射爐)를 건조하고 대포 주조와 서양식박용수리공장을 건설, 서양선 건조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전했다. 사무라이와 과학의 만남이었다.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메이지 일본은 인재를 육성하고, 증기에서 전력으로 산업시스템을 구축하여 스스로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8현 11시, 23곳의 산업유산군은 이 급속한 산업화과정을 증명해 준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는 인류 전체에 그 보편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그러나 한국의 집요한 프로판간다로 인하여 제2차세계대전중 징용문제라는, 본유산군의 가치와 이질적인 정치문제를 꺼내들면서 논점이 바뀌었다. 본래 내 역할은 추천서 작성과 올해 5월 ICOMOS권고까지라서 그 후에는 외무성에 바통을 넘겼다. "정부 일원으로서 지원해 주기 바란다"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본에 도착한 이후로, 이미 회의가 시작된 때였다. 나는 자유로운 기풍으로 살아왔기때문에 두 번 거절했다. 7월의 본은 찜통더위라 할 만큼 낮이 길어 렌터카를 운전하며 호텔로 돌아 왔을때 이미 심야를 지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은 손익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신념으로 삼아왔다. 민간인이긴 하지만 5년간 정부와 함께 해왔다. 아무런 보수 없이 일본에서 응원하러 와 준 관계단체 여러분의 모습에 마지막 국면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파독산업전사세계총연합회 회원들이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화유산의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사진:교도통신)


한국정부는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집요하게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코모스 간부가 "일본을 동정한다. 잘 견뎌내고 있다. 한국정부는 심사원 전원이 반대문서를 가지고 방문했다. 그러나 이코모스는 한국의 이코모스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룰 위반이니 그만하라'고 부탁했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니...'라고 고집을 부렸다. 서둘러 세계유산위원회가 끝나기를 바란다. 한국의 로비는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수많은 세계유산위원회 대표단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가 일본에 동정적이었다. 하지만 위원국 대부분이 정재계 거물로 모든 수준에 있어서 한국정부의 로비활동을 받고 있었다. 6월 초, 한국의 정부고관이 파리의 유네스코대사들을 초대한 회합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등록을 결정할 때)투표에 動議하는 나라와 이를 지지하는 나라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 "일본 대사가 한 번 간다면 한국은 6번 찾아간다". 6월 중순에 내가 파리를 방문하여 세계유산위원국 대사들과 만났을 때 모든 대사들은 "왜 자국이 이러한 양국 분쟁에 말려들어야 하는가?"라며 싫증을 내비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로비 활동을 막지 못하는 일본정부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위원회 모두연설에서 폴란드 대표는 "이번 세계유산위원회는 정치에 오염되었다"고 말했다. 까페에서 영국대표단과 점심을 먹고 있을 때 폴란드 대표단 한 사람이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자네 알고 있지? 그건 한국을 말하는거야"


이코모스에서 권고가 나오고 나서 한국계 NGO의 활동이 심해졌다. 위원국 대표단에게 매일처럼 인권침해를 떠올릴만큼 그로테스크한 사진과 전시중 굶어 바짝마른 사람의 사진이 배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 심의가 한창인 가운데에도 한국계 NGO는 이번 유산과 관계없는 사진을 교묘하게 이용한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소책자는 가지각색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눈을 떠라 유네스코, 세계여, 인류여"라는 제목이 쓰여진 것이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센터는 한국 NGO의 배포물과 전시가 심의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실로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은 한국단체의 프로파간다가 "심의에 영향을 끼친다"라며 유네스코에 항의를 했었던가? 일본은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유네스코에 대한 지원을 재고해야 할 터이다. 매일같이 보내오는 사진에 의장국인 독일은 "독일과 일본은 같은 역사배경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독일외무성은 미팅에서 꼭 아우슈비츠를 인용했다. 나는 "전시징용을 오해하고 있지 않나요? 아우슈비츠는 나치스 독일이 한 겁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역사와 같을 수 없습니다"라고 반론했다. 그러나 위원회 회기중에도 독일외무성 여성외교관은 "저 사진을 봤나? 이제 좀 인정하는게 어떤가?"라며 말을 듣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은 의장국인 독일이 한국의 프로파간다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식으로 항의했었던가? 실제로 독일의 대응은 상당히 편향적이었다.


세계유산의 룰을 보면 심사과정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징용문제는 본 건의 세계유산가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세계유산과 엮어서 양국간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 함정에 빠진걸까? 나는 내각관방팀과 17개국을 방문하여 이 세계유산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요청했다. 정말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이코모스 권고를 지지했다. 때로는 전시징용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지만 대다수 담당자가 일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어느 정도 이해를 나타냈다. 의장국인 독일은 "합의되지 않는 경우에는 연기동의로 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시사했지만 우리는 룰에 따라서 議事를 진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결과, 가령 올해 등록을 못하더라도 계속 싸워나가기로 했다. 16년이나 기다렸으니. 나는 민간인이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각 위원국 대표와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았다. 그 때 위원국 대표와 대화를 나누면서 외무성의 전략에 따라서는 질 만한 싸움이 아니었을거란 생각에 너무나 아쉽다. 지금껏 이코모스의 등록권고를 얻어내면서도 등록되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고 어떤 위원국도 본에서 결론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한국이 반대를 하더라도 함께 일본을 위해서 싸워준 위원들이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시종일관 투표싸움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사이좋게 양보하는 미덕이라는 기풍속에서 외무성에게 이런 싸움은 고통이 아니었을까. 유네스코는 합의를 중시하며 외무성에서도 투표로 정해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 없는 상황 속에서 선택지는 점점 제한되어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회의장에서 위원국을 설득하고 있던 것은 내각관방팀이었다. 한편, 한국정부는 그것이 얼마나 지저분한 싸움이라 하더라도 퇴로를 차단하고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일본이 반성해야할 점은 많다.


역사는 국가주권의 문제다. 한국과 중국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쉽게 양보해서는 안된다. 前정권이 한번 물러나더라도 잘못을 깨우치면 정정하면 된다. 타국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가 아닌 옳다는 것을 옳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베 총리다운게 아닐까. 앞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가 하나되어 본래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려나가는 것이다.

  1. 가고시마, 구마모토, 나가노, 사가, 후쿠시마, 야마구치, 시즈오카, 이와테 [본문으로]
  2. 가고시마, 나가사키, 사가, 기타규슈, 나카마, 오무타, 아라오, 우키, 하기, 이즈노쿠니, 가마이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