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SAPIO 2015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인은 우수", "일본인은 열등"하다는 차별의식이 反日에 불을 지핀다


위안부, 다케시마(독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반일운동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정부가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반일분위기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대균(수도대학도쿄특임교수)은, 그 밑바탕에는 한국인이 가진 "일본인은 본래 야만한 존재"라는 의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매주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수요시위는 1,100회를 넘어섰다. 2011년 12월에 1,000회를 기념하여 위안부동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반일행동은 다케시마문제와 야스쿠니문제 등 여러곳에서 분출된다.


먼저 말해두지만, 한국은 일본에 대한 칭찬과 동경의 감정도 적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일뿐만 아니라 친절하고 근면하고 참을성 강한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동경의 존재로 언급되고, 때로는 본받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기때문에 유난히, 반일은 질투가 섞인 원한의 감정이라는 양상을 드러낸다.


동경만으로 질투는 생겨나지 않고 원한만으로도 질투심은 생겨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우수한 민족인데 일본인만 나아진다"라는 사고가 깔려있다.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질투에는 전통적인 화이사상의 영향도 있다. 화이사상이란 세계를 和와 夷로 나누어 바라보는 중화문명적 세계관으로 오랑캐(夷狄)를 야만인으로서 멸시하는 사상이다. 그 '화이질서'속에서 한국인은 스스로, 문화적으로 중국에 친숙하다는 인식이 있고, 반대로 일본은 자신들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다.


▲ 에도막부의 어용화가인 가노 마스노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통신사' 그림. 한국에서는 이것을 근거로 "일본인은 맨발로 걷는 야만한 민족이었다"라고 주장한다(하지만 그림에서는 짚신을 신고 있다).


일본문화를 멸시하다


그 사상은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의 고교생활의 역사교과서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에 일본과의 관계에 관한 기술에서 '전파', '전래'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새로운 문물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 우리나라사람들은 토착사회의 일본인을 교화했다. (중략) 유교의 오경과 벽화를 가르쳐주고 종이와 먹을 제조하는 방법을 전수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열도에 건너간 사람들은 선진기술과 문화를 전수하고 야마토정권을 탄생시켜 고대 아스카문화 성립에 공헌했다"(국사편찬위원회편, 1996)─라는 논조다.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는 교류의 역사이지만 한국은 반도측의 '문화적 선진성'이나 '우월성'을 전제로 '전수'했음을 강조하는 일이 일상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은 일본문화에 대한 경시와 멸시의 태도가 강하다. 한편으로 일본인의 행동양식에 대한 존경의 태도와 감정이 있지만, 양쪽의 어긋난 모순을 자각하는 일은 드물다. 그 '열등한'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자신들을 뛰어넘어버렸다. 결국 "자신들이 경험한 고생과 노력과는 무관했기에 가능한 성공이다"라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최근에는 미국 등 세계각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기업가도 많다.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떨어져 있기에 일본문화의 힘과 매력에 깨닫기 시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이나 프랑스에 있어도 자문화와 일본문화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해외에 나가도 일본인들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 언뜻 무능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우리 한국인은 우수하며 가장 성공해야하는데 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가"라는 질투의 감정이 여기서도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자존심이 폭주하다


어떤 나라라도 자존(自尊)과 자제(自制)가 서로 겨루는 역사가 있다. 공명심(功名心)과 자중(自重)의 겨루기라고도 할 수 있다. 양쪽 사이에서 적당한 긴장관계가 유지될 때 국가가 발전하며, 1970년대까지 한국은 훌륭한 균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90년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자존의 폭주라는 상황에서 이 자존심은 반일과 이어진다. 자존심은 처음부터 그것이 충분히 주어졌던 사람이라면 특히 의식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다.


한국인이 자존과 자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일본인보다 어렵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양쪽의 균형은 한국의 국력이 증대되고 풍요로워지자 무너져버린 것이다.


자존과 자제에는 레퍼런스, 즉, 롤모델, 비교대상이 있지만 그것이 항상 일본이었다는 점도 한국의 쓰디쓴 기억일 것이다. 롤모델로서 일본의 존재감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은 "일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선진국이 되었다"라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 “이웃에 다른 인종 살면 싫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 한국은 두번째로 높은 30%~40%미만인 그룹에 속한다.[각주:1]


일본인은 반론해야 한다


앞으로도 한국의 반일은 계속될 것인가. 호전될 요소는 있는가.


일본은 민족적동질성이 높은 나라지만 아이누민족도 있는가 하면, 류큐민족도 있고, 재일코리안도 있다. 꽤 다양한 마이너리티가 존재하기때문에, 배외주의를 컨트롤하고 시정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국에도 일본계 한국인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화교 커뮤니티가 조금 있을뿐 마이너리티는 거의 없다. 이처럼 배외주의를 컨트롤하고 시정하는 집단이 없었다. 일본인에 대한 차별에 아무런 비판도 없는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인은 특유의 상승지향으로 인해 점점 해외로 나가고 국제결혼도 늘고 있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도 증가하고 있기에 앞으로 한국사회에 약간의 마이너리티 커뮤니티가 형성될 가능성은 있다. 이제껏 마이너리티 집단이 부재했기에 충분히 컨트롤되지 않은 배외주의는, 긴 안목으로 보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의 차별을 조장시킨 것은 일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일본인은 좀처럼 반론을 하지 않기때문에 반일을 유인한 것이다. 한국에서 반일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일본은 도도하게 반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주장에 2~3배로 되받아치면 그들도 조금은 일본인을 다시보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일본인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 지금의 한국인은 "일본인은 내성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서 영어로 설득력있는 스피치로 한국에게 반론할 수 있는 일본인이 얼마나 있을까. 일본이 반론하는 힘을 기름으로써 그들의 착각을 바르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1. <a href="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rldviews/wp/2013/05/15/a-fascinating-map-of-the-worlds-most-and-least-racially-tolerant-countries/">〔The Washington Post〕 A fascinating map of the world’s most and least racially tolerant countries</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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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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