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Newsweek 일본판 2015년 10월 13일자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우호국에게 둘러싸였던 독일과, 미국에게 구속되었던 일본

너무나 다른 지정학적 환경이라 비교는 무의미하다


전세계 언론이 일본의 외교를 다룰 때, '제2차세계대전의 기억'이 주변국과의 관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언급하는 것은 상투적인 공식이 되었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당시 일본이 아시아에서 잔학행위를 반복했던 일은 정치가와 로비단체・역사가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군위안부문제는 심각한 인권침해다"라고 이야기했다. 어째서 일본은 지금도 70년전의 전쟁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여기서 한가지 유력한 비교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이 독일이다. 나치스 독일이 특정 인종을 대량학살 했던 사실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아이덴티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전시중 잔학행위가 주변국과 우호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장해가 되지 않았다. 나치가 저지른 일을 직시하고, 기억하며, 사죄하는 과정을 통해 독일은 역사와 타협을 짓고, 희생된 사람들과 화해해 왔다. 일본은 그러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주변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독일인 저널리스트인 요헨 비트너(Jochen Bittner)는 뉴욕타임스에 "독일이 일본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기사를 기고했다. 이 글에서 비트너는 "독일은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던 과거를 마주보았기에 주변국에게 신뢰를 얻었다 ... 보통국가가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도 보통국가가 되고 싶다면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독일이 보통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사를 대하는 자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정세와 주변국의 상황 등 외적요인이 끼친 역할이 훨씬 컸다. 그렇기에 일본은 독일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戰後史를 대강 훑어보면, 독일이 처해졌던 환경과 적어도 다섯가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자본주의・민주주의진영과 공산주의・독재주의진영으로 분단되자 서독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일본은 미국의 '핵 우산'아래로 편입되었다. 독일은 핵보유 3개국(미국・영국・프랑스)이 중심축인 기구 속에서 일정의 교섭능력을 가지고, 때로는 3개국의 입장 차이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1945년 이후, 미국과 '양국관계'에 갇혀왔다. 심지어 그것은 미국이 일본을 비호하는 관계로 일본에게 교섭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둘째,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일반적으로 '냉전'이라고 불리지만 이 말이 적합한 곳은 유럽과 미국뿐이다. 아시아에서는 6.25전쟁・베트남전쟁,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대리전쟁을 통해서 자본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열전'이 계속되었다. 일본의 외교당국자로부터 "미국의 우산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다. 전후 프랑스의 간절한 바람은 超大國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위대한 나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보호에만 의존할게 아니라 대항마적 관계가 필요했다. 戰前에는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戰後에도 바로 유럽경제를 견인하게 될 독일과의 협력관계는 최선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프랑스가 제시한 기회를 손에 쥐고 독불관계를 기반으로 현재의 'EU'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 서독의 공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측의 우호자세와 솔선 그리고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이 이와 마찬가지로 하지 않았다고 추궁하는 것은 생각이 짧은 것이다. 종전 직후 대다수 아시아국가가 식민지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채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내걸고 일본과 동맹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戰後 아시아에서 프랑스 정도의 대국은 중국뿐이었다. '서독과 프랑스'같은 관계를 일본이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확립하려 했다면 미국이 잠잖코 있을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넷째,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유럽 국가와의 화해를 목표로 한 '동방외교'를 펼칠 수 있던 것은 독일이 미국과의 관계를 부동의 관계로 만들고, EU의 기틀만들기에 착수하고나서다. NATO의 집단안전보장・유럽시장 진입・유럽의 평화를 향수하고 있었기에말로 독일의 지도자들은 민주화만이 아닌 동쪽의 공산주의국가와 화해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한편, 아시아는 미국 주도의 안전보장체제 틀 속에서 일본은 브란트 정권의 서독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군사면에서의 보호나 미국시장 진입이라는 점도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에게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은 당시나 지금이나 부담이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국가─특히 독일은 냉전종결이 轉期가 되었지만 아시아는 여기에 필적할 분기점이 없었다. 소련붕괴 이후 구소련권 공화국과 위성국은 주권을 회복하고 독일은 재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아시아는 경제면에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치면으로는 정체분위기가 감돌았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중국과 대만도 분열된 채였다. 각지에서 독재정권도 건재했다. 유럽에서 베를린의 벽이 무너진 것은 1989년, 아시아에서는 천안문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이 기존 틀의 범위내에서 자유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어도 현재까지 보호자인 미국과 계속해서 연계강화를 모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가 지적했듯이 일본의 對中강경노선의 배경에는 미국에 충성을 나타낼 의도로 해석 할 수 있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라는 고대 로마의 가르침을 떠올려보면 아시아 각국의 완전한 화해가 정말 미국의 이익이 될 것인가. 아시아가 분열되어있기에말로 미국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처럼, 독일과 일본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일본이 독일과 같은 '보통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은 과거와 마주보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공정하지 않다. 일본이 '보통'인지 아닌지는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독일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는 일찍이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좀처럼 사죄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프랑스의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은 알제리 독립 50주년을 맞이한 2012년,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지배는 극히 불공정하고 잔혹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죄는 하지 않았다. 영국도 식민지 시절 인도의 주민학살에 대해서 사죄하지 않았다. 1930년대 에티오피아인을 학살한 이탈리아, 또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던 터키로부터도 사죄는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조차 "베트남 전쟁은 커다란 실수였다"며 베트남전쟁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인정했을 뿐이다. 진짜 비극은 일본이 과거와 마주보지 않는 일이 아니다. 전세계에 과거와 마주보지 않으려는 나라들 투성이고, 그것이 '보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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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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