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 인터넷 언론인 iRONNA기사의 번역문입니다.

不都合な歴史を直視しない韓国 日本人はいわれなき批判に反論を


한국인은 매년, 광복절이 다가오면 마치 자국이 제2차세계대전의 승전국마냥 언동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한반도 사람들은 전쟁당시 일본인과 함께 연합국을 상대로 싸웠다.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신(祭神)중에도 수많은 조선출신자가 있다. 특공대로서 산화(散華)한 사람도 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아니다. 조선독립운동의 결과도 아니다. 일본의 항복과 동시에 조선은 자치권(=독립이 아님)을 얻었지만 익월에 진주해 온 미군은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군정을 세웠다. 한국은 1948년 8월 13일, 미국의 점령통치로부터 독립을 얻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세계문화유산을 둘러싸고도 사실오인과 거짓이 많다.


얼마전 등록이 결정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둘러싸고 한국에서는 "일부 시설에서 한반도 출신자가 강제노동을 당했다", "강제징용된 한국인(=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은 200만명"이라는 보도까지 있었다지만 이런 짓은 혐한 일본인이 늘어날 뿐이다.


본래 전시하에서 노동력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징용'은 영국과 미국에서도 행해진 합법으로 당연히 임금도 지불되었다. 한반도에 국민징용령이 적용된 것은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 종전까지 약 1년이다. 패전이 짙어지던 시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200만명이나 연행할정도의 해군력이 있었을까.


위안부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도 적당히 그만두는 것이 좋다.


미군이 1944년, 미얀마에서 조선인 위안부 20명을 심문한 보고서에서도 밝혀졌듯이 그녀들은 임금을 받았기에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운명에는 동정하지만 당시 공창제도는 합법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재한미군기지 부근 매춘가에는 미군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던 미군위안부가 있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前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기록이 한국 국회에서 언급된 적도 있다.[각주:1]


주간문춘은 올해 3월,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 중, 사이공에 위안소를 설치했었다는 특종기사가 보도되었다. 한겨레신문은 그 다음달 말에 "괘씸하지만 반박이 어려운…", "한국 정부는 앞으로 베트남 당국과 협의를 통해 (중략) 조사와 후속 조처에 나서야 한다."[각주:2]고 보도했지만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나는 이제껏 저서에서 수차례 썼지만 한국도 미국도 UN도, 일본을 위안부문제로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일본인은 쓸데없는 비판에는 확고히 반론해야만 한다.

  1.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208688">〔한겨레〕 ‘기지촌 여성 관리’ 박정희 친필 서명 문건 공개</a> [본문으로]
  2.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272128">〔한겨레〕 일본 언론의 ‘한국군 터키탕’, 괘씸하지만 반박이 어려운…</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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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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