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Newsweek 일본판 2014년 11월 4일자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냉전의 최전선 전쟁이 시작된 1950년 6월 25일, 미국제 차량을 탄 한국군이 38도선을 방위하기 위해 향하고 있다.


노무현 시절, 6.25전쟁 전후로 일어난 대량학살이 밝혀졌지만 보수파는 사실을 묵살


최근 1년간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는 항상 긴장이 높아지고 지금껏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정부는 일본이 과거에 학살행위를 청산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계속해서 비판할 뿐이다. 이런 한편으로 한국도 스스로 성가신 역사문제를 안고 있다.


6.25전쟁 전야와 전쟁이 한창이던 때 한국군과 경찰, 민병조직이 수십만명의 민간인과 정치범을 처형했다. 한국의 과거 정권은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일정의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려는 리버럴과 사실을 봉인하려는 보수파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은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심지어 학살은 없었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각지에서 학살이 일어난 것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6.25전쟁이 발발한 시기였다. 당시 한반도는 공산주의진영과 자유주의진영이 맹렬히 맞부딪치던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주의사상과 무관한 수많은 민간인을 포함해 공산주의진영의 앞잡이로 몰린 사람들이 한국군과 반공무장집단에 의해 대량처형되었다.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 사건에서는 공산주의자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가 출동하여 죄 없는 도민이 대량으로 처형되었다. 같은 해, 여수・순천 사건에서는 제주도의 봉기진압에 출동한 치안부대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반란군소탕에 휘말린 다수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큰 학살 사건은 1950년의 보도연맹사건이다. 좌파를 재교육하기 위해서 설치된 조직 '국민보도연맹'의 가맹자와 민간인 등 10만~20만명이 6.25전쟁 개전후에 대량처형되었다.


이러한 학살 희생자의 유족은 '빨갱이' 꼬리표가 달리는 것을 두려워 하여 오랫동안 입을 다물어왔다. 2005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좌파의 노무현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보수파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했다.[각주:1] 조사 결과 위법 처형이 이루어졌던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조사위원회 죽이기


이에 대해 일부 보수파는 위원회의 활동은 좌파 세력확대를 노린 정치적 움직임이라며 맹반발했다.[각주:2] 위원을 맡았던 정치학자 김동춘은 저서에서 보수파와 언론이 위원회의 조사활동을 끊임없이 방해했다고 밝혔다. 위원회 설치시 정한 활동기한인 2010년을 맞이해도 조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위원회의 해산을 명령했다.[각주:3]


6.25전쟁에 관한 저서를 집필했던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해산후에는 거의 진전이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 前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그들의 지지자들은 학살은 없었고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위원회 보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식적인 역사는 대부분 학살 사실을 봉인하고 있다. 학교 역사수업에서 거론되지도 않고 많은 한국인은 학살에 관해서 들은 적도 없다.


필자는 올 여름 서울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6.25전쟁 관련 전시를 주의깊게 관찰했지만 학살에 관한 설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제주도와 여수에서 민간인을 대량처형한 것도 공산주의의 봉기를 진압한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박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뒤 사퇴한 문창극도 제주도 도민이 무차별하게 살해된 것을 무시하고 봉기의 진압이었다고 강변했다.[각주:4]


학살의 기억은 다양한 형태로 왜곡되고 부인되어 왔다.


뉴욕타임즈의 최상훈 서울특파원은 6.25전쟁 도중 미군이 피난민을 대량학살한 노근리사건에 관한 보도를 높게 평가받아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학살의 역사가 한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오랫동안 지켜 본 최씨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죽이기는 보수파의 뜻일 겁니다. 최근 보수파는 립서비스를 할 뿐입니다. 보수활동가나 신문도 제주도 등에서 벌어진 학살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했습니다"


최씨는 노무현이 진실규명과 화해를 추진해 왔던 시기에서마저 위원회의 조사결과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학살이)국민적 논의로 발전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유력신문이 거의 다 우파라는 점도 한 몫해서 주류 언론은 위원회 활동을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의심암귀 6.25전쟁 발발후 얼마 안된 1950년 9월, 미군주도의 UN군의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한국측이 인천항을 장악. 한국군은 공산주의의 앞잡이로 의심되는 시민을 샅샅히 뒤져 연행했다.


일본에게는 청산을 요구하지만


최씨에 의하면 고령자 중에는 6.25전쟁 당시 잔학했던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역사교과서는 사상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비교적 리버럴한 교과서마저도 학살을 깊게 다루지 않습니다."


한일간 역사문제와 마찬가지로 한국내의 역사문제에서도 교과서 기술이 논쟁의 초점이 되어 있다. 김동춘은 필자의 취재에 메일로 응했고 현재 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명박 前대통령은 학살에 대한 언급을 없애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개정시켰다고 김씨는 주장한다.[각주:5]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 사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정부로서는 일본에게 과거청산을 압박하는 쪽이 속편하다. 일본때리기를 하면 국민이 단결하지만 학살 사실과 마주보려 한다면 우파와 좌파의 균열이 커질 것이다. 정부가 진실규명과 화해를 외친다해도 정치적으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과거 잔학한 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기억을 가진 고령자는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젊은 세대도 영화와 책에서 학살에 관해서 알 수는 있지만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는 적다.


자국에 대한 일본의 과거 잔학행위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국. 하지만 자국에서 일어난 학살은 과거의 문제에 불과한가 보다.

  1.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0308423">〔한국일보〕 [과거사委 1일 출범] 조사→명예회복→보상… 4~6년간 활동</a> [본문으로]
  2.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0326560">〔동아일보〕 [이재호 칼럼]‘과거사정리위’ 다시 구성하라</a> [본문으로]
  3.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52&aid=0001945101">〔참세상〕 진실화해위, ‘보수’의 손에서 임기 종료</a> [본문으로]
  4. <a href="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207598">〔폴리뉴스〕 문창극, ‘민족 비하’ KBS보도 녹취 전문</a> [본문으로]
  5.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081616">〔노컷뉴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4.3제외(성명서 전문)</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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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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