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본의 국제정보지 Newsweek 일본판 2014년 11월 4일자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옛 기지촌터


정부의 국책으로 미군에게 '성적봉사'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前매춘부들의 싸움


김경삼이 자란 곳은 동서냉전의 최전선으로 혼란에 휩싸였던 가난한 시절의 한국이다. "숙식을 제공해주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 가족에게 돈도 부쳐줄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젊었던 김씨가 중개인을 따라간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손톱만큼도 '좋은 일자리'가 아니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이었다.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는 연합군을 주력부대로 한 미군이 찾아왔다. 1953년에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미군 주둔은 계속되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각지에 미군기지가 있다.


그런 기지의 바로 외곽에 지금은 사라진 허름한 네온거리에서 김씨는 미군을 유혹하며 몸을 팔아 돈을 벌었다.


이윽고 마약에 빠져들었지만 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밑바닥 생활에서 벗어났다. 미군과 결혼한 것은 포주에게 빚으로 구속되어 있던 매춘부들이 손을 씻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남편은 그녀와 자식을 버렸다.


지금 한국에서는 김씨가 일했던 '기지촌(주한미군기지 부근 매춘가)'은 없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던 매춘부들은 오랫동안 우롱당하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김씨는 "셀 수 없을 만큼 후회를 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다."고 회상한다.


김씨는 전부 미군 탓은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미군은 젊었고, 즐기기를 원했고, 놀라울 만큼 순수했다. 오히려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 한 것은 한국정부다. 정부는 위법인 매춘업을 음지에서 장려했다고 한다.


김씨를 포함한 122명의 '미군위안부'는 지난 6월, 정부를 상대로 1,000만원의 배상금과 진상규명, 그리고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배상금액은 적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인정받으면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서 한국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했었던 사실이 확실해진다.


물론 정부관계자가 대놓고 '호객'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정부는 1961년에 매춘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그러나 연구자와 인권활동가에 의하면 당국이 지정한 지역에서는 일정 시간대에 한해서 매춘행위를 허용했었다.


한국이 겨우 세계적인 기준에 따라 매매춘금지법을 제정한 것은 2004년에 이르러서였다. 단, 당시는 이미 주한미군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현재는 2만8천명 정도) 기지를 둘러싼 상황은 크게 변해있었다.


달러벌이로서의 공헌


이전부터 미군의 범죄는 커다란 문제였지만 2002년에 주한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2명을 치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에서 격렬한 항의운동이 일어났다. 미군측도 통금시간을 엄격하게 정하고 음주금지기간을 도입하는 등 강기숙정에 노력했다.


한편, 규모는 작아졌지만 미군을 상대로 하는 환락가는 지금도 건재하다. 3대 환락가로 알려진 동두천, 의정부, 평택에서는 주로 필리핀과 러시아인 호스티스가 미군을 상대하고 있다. 그중에는 인신매매와 비슷한 수법으로 외국인 여성을 데려와 여권을 압수하여 일을 시키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비참한 입장이었다고 하지만 기지촌에서 일했던 한국인 매춘부들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6월에 제기한 소송에 따르면, 1957년 이후 한국의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미군기지 주변의 특정지역에서 매춘행위에 종사할 것을 강요받았다. 원고측은 정부가 눈감아 준 것은 매춘을 장려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법적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는 종종 기지촌의 일제검거를 실시하여 매춘부들에게 성병 검사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 결과 성병감염이 확인된 여성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격리시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원고측은 주장한다.


김씨는 "정말 심했다. 나는 정부가 (매춘 단속을)부실했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미군위안부'는 정부가 자금원조를 하는 강좌에서 서양의 에티켓과 영어회화도 배웠다. 거기서 그녀들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안전보장에 공헌한다며 수차례 칭찬받았다고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우려한 한국정부가 매춘부들을 이용하여 미군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했다고 한다. 미군 병사들이 쓰고 간 달러는 당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한국에게 귀중한 외화였다. 이제껏 한국정부는 미군병사를 상대로 매춘을 장려한 사실을 일관하여 부인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도 소송에 대한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미국이 주한미군의 축소를 결정하자 기지촌도 축소되었다. 그 많던 매춘부들도 성산업에서 떠나갔다. 왜 이제서야 그녀들은 역사의 오점을 파헤치려는 소송을 제기하는가.


그 이유는 수십년이 지났기때문이다. "이제 와서야 겨우 그녀들이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게 되었다."고 원고측 변호인인 하주희 변호사는 말한다. "그녀들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매춘을 강요했던)여성들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던 구조적인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안부'라고 부르는 이유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前매춘부들이 미군의 '위안부'라고 이름붙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에서 '위안부'라고 하면 보통 제2차세계대전중에 일본군의 성적위안을 강요받았다고 알려진 조선의 여성을 말한다. 그 사실과 배상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에서 커다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캐서린 문 상급연구원은, 과거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부들이 "구일본군의 위안부 문제에 편승하여 이 문제에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문은 1997년 저서에서 주한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은 국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위안부문제는 국내외로 잘 알려져 있기에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 여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문씨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일본의 위안부문제와 혼동을 불러와 대중을 혼란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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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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