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

저자
이토 준코 지음
출판사
개마고원 | 2002-05-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저자는 한국에서 10년 이상 살았고 지금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일본인 저자가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직접 체험한 한국인의 민족주의와 배타성을 날카롭고 적나라하게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다.


주로 1990년대에 벌어진 사건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광범위한 주제를 보면, 저자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외국인유학생과 노동자, 재일교포, 화교, LA폭동, 이민, 고아수출, 반일, 반미, 남북관계 등 매우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경험담과 섞어 설명하고 있다.


2002년에 출간되었기에 지금은 개선된 부분도 있어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불과 20년전의 한국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학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읽어나가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2002년 초판 1쇄인걸 보니 역시나 한국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한국인을 위한 애정어린 충고이지 결코 한국인을 깔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이 책을 읽고 망상을 뒤섞어 악평을 써놓은 인간들은 정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긴 그게 국뽕좀비의 사고회로의 한계이니 어쩔 수 없는건가.



반일민족(국뽕)사관에 세뇌된 한국인

한국 여대생과 같은 방에서 지낼 때도 그녀의 교회 친구라는 남학생들이 나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 일부러 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물 흐르듯이 매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나 대중매체를 통해 배운 대로 떠들면 되었을 테니까.


일본인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 교육의 대상이었다. 민족주의라고는 하지만 '반일'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실시되어 우발적인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반미'의 경우에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한국인들은 정식으로 반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것은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말하면 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38p)



맹목적 반미주의 폐해 #1

나와 같은 반에 마이크라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뉴욕 출신인 그는 스물다섯 살로, 키가 훤칠하게 크고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보통 백인이었다. 마이크는 아시아를 무척 좋아하여 일본에서 3년 동안 살다가 1990년 9월에 한국에 왔다. 그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는데, 그로 인해 늘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한국어는 일본어와 비슷하다니까 한 일 년 정도 배우면 잘할 수 있겠지."


(중략)


"마이크가 경찰서에 끌려갔대."

"뭐라고? 왜?"

"이태원에서 한국인과 한판 붙은 모양이야."


마이크가 이태원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 어떤 한국인이 갑자기 "뻑큐!"라고 욕을 한 게 싸움으로 번진 모양이었다. 그 일로 마이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틈만 나면 한국인의 도덕성을 흠잡으며 미국인의 우수성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일본에서 익힌 문화적 상대주의는 아득히 멀어져갔고, 철저한 민족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민족주의 옆에서는 민족주의가 잘 자란다. 한국인이 외국인을 공격할수록 그들도 마음의 문을 닫고 고집스럽게 변해갔다.


1991년 1월 걸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마이크를 보면서 어떤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와 함께 수업을 받고 있던 주한미군 병사들은 비상 징집명령이 떨어져 벌써 며칠 전부터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교실 안에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온 한 유학생은 교실에까지 라디오를 가지고 들어와 잠시도 귀를 떼지 않고 전쟁 상황을 듣고 있었다.


"Saddam attacked to Israel!"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그녀에게서 들었다. 그러자 마이크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사담 후세인을 죽여버리고 싶어."


그는 증오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실제로 주먹까지 휘둘렀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토록 무서운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는 유태 계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을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중략)


걸프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 마이크는 한국을 떠났다. 학기 초에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급우에게조차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예의 그 무서운 얼굴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43~45p)



다음은 한국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필립이라는 남자에 관한 에피소드다


맹목적 반미주의 폐해 #2

그는 가끔 한국인의 편협한 민족주의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반성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화가 났던 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학문상으로나마 친구를 사귈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가 연구하는 한국 근대사 분야는 한국사 중에서도 가장 민족주의가 강한 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외국인이 연구하도록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고집스런 배타성이 아주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학문 분야에 민족주의가 침투하면 십중팔구는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태평양전쟁 전 일본의 황국사관, 북한의 김일성 전설과 같은 극단적인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국인 연구자는 필요하다. 일본에는 외국인의 의견을 너무나 잘 반영하여 우익 단체로부터 '자학사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단체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50p)


또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뜨거운 시선을 느껴 뒤돌아보니, 웬 한국 남자가 싱긋 웃고 있었다고 한다. "우와, 역시 미국인은 크군. 내가 졌다. 졌어."


너무나 능글능글하고 무례하여 필립은 항의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배타주의라도 한국인은 일본인처럼 외국인이라고 해서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일단 온몸으로 부딪치고 본다. 직설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면에서 당황했던 우리들도 차츰 한국인의 말투에 익숙해져갔다.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필립 일행에게 한 취객이 투덜대며 다가왔을 때에도 그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 놈......"


'또 시작이군.' 이렇게 생각하고 무식했는데, 그 남자가 드디어 도발적인 태도로 시비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립이 친구를 재촉하여 자리를 뜨려고 하자 그 남자는 갑자기 바로 앞에 놓여 있던 식칼을 잡더니 필립의 눈앞에 들이대었다고 한다. 필립은 재빨리 남자의 손목을 잡고 식칼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너무나 무서웠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말이야...... 태어나 처음으로 살기를 느꼈어."


필립에게는 이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을 찾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욕을 퍼부으며 자기 나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옛 일을 회상하며 금방 다시 돌아오는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서울은 할렘가보다 무서웠어." 뉴욕 할렘가 옆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필립이 한 말이다. (55~56p)



일본인의 죽음은 한국인의 기쁨

한편 영어반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지진을 당한 불행한 이웃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서양인 교사에게 한국인 학생들이 '일본이 당하니 고소하다.' '천벌을 받은 것이다' 등의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은 것이다. 그러자 일본인의 피가 섞인 여선생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 자리에서 자신의 출신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했다. 또 일본인 아내를 둔 미국인 교사는 분통을 터뜨리며 나에게 말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한국인은 사람도 아니야."


그날 지하철에서는 신문팔이가 "좋은 소식입니다"를 외치며 고베 지진을 알리는 신문을 팔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몇몇 사람들에게 들었다. 또 컴퓨터통신에서는 일본의 불행을 기뻐하는 목소리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저녁뉴스에서는 악의를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지진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알고 지내는 한국인에게서는 쉴 새 없이 안부전화가 걸려왔다.


"준코 씨 부모님은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부모님을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한국인은 서양인 앞에서는 본심을 드러내고, 일본인 앞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동정을 표하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는 일본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진심으로 생각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한국인이다. 그러니까 영어반에서 나타났던 반응은 일본인을 직접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식민지세대보다 해방 이후 세대가, 일본어 학습자보다 영어 학습자가, 일본을 모르면 모를수록 반일의 내용은 유치해졌다.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비대화된 추상이고, 국시인 '반일'은 거대한 하나의 원칙이다. 일본인 친구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모인 영어반이나 일반 대중의 반응은 이 원칙만이 독주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84p)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커녕 왜곡을 일삼는 한국인의 이런 인식은 아직도 굳건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히히덕거리는게 한국인의 실체다.



한국인이 원하는 재일동포의 이미지

한국인이 '학대받는 재일동포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 일본 사회의 야만적인 차별 구조를 강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사는 친척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가진 자'에 대한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다. (152p)



민족주의 한국인의 종특, 책임전가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해외 동포의 행동을 보면, 그것을 그가 자란 나라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우수한 점은 민족의 피가 흐르는 덕택이고, 좋지 않은 점은 외국의 물 탓이란다. 행동만이 아니라 생김새도 그렇다 재일 한국인 친구 한 명은 "피부가 깨끗한 것은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며, 치열이 고르지 못한 것은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고, "얼굴까지 두 나라로 분단당했지 뭐야"하며 분개했다. (155p)



쇼비니즘으로 무장한 한국인을 향한 일침

자기 정체성을 찾아 한국을 방문한 한국계 2세 친구는 그 과격한 반일감정과 편협한 민족주의에 그만 당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토론토에서 운영하고 있는 하숙집에서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사이좋게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고, 그녀가 속해 있던 인권동아리에서도 여러 소수 민족들이 하나가 되어 행동하고 있었다.


"저의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국인으로서 경험한 역사라든지 풍부한 민족문화를 아는 일은 저에게도 무척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얻기 위함이에요. 다른 민족과의 차이를 내세워 외톨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과 민족주의의 깃발을 흔드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도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그러한 차이를 도무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 문제는 분명 중대한 전쟁범죄이고 여성 학대이지만, 그것을 일본인의 민족성까지 들먹이며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한국 남자들이 동남아시아로 매춘관광을 떠나는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215p)



한국인의 화교(외국인) 차별

"일본이 살기 더 편했나요?"

"그건 그랬지. 일본에서는 땅도 살 수 있고."


(중략)


"한국인은 절대로 사람을 평등하게 보지 않아. 반드시 위아래를 구별하지. 식당을 하는 화교는 개만도 못해. 가게에 와서도 거만한 태도로 우리를 하인 취급한다니까."

한사장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그런가 하면 순 아저씨의 부인도 "일본인 손님들은 아주 친절했어요"라고 말했다. (206p)



사람에게 서열을 매기고 차별하는 한국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소수민족 사회의 폐쇄성은 어느 민족이나 조금씩은 다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계 이민사회는 본국의 사회구조나 생활습관을 너무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흑인이나 히스파닉은 한국인들이 자기들을 깔본다고 말하며, 그들은 돈밖에 모른다고 비난한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면 뭐라도 훔칠까봐 줄곧 감시를 해요. 물건을 사도 웃을 줄 모르고, 거스름돈도 안 주려 하지요."


"한국 가게 주인은 월급도 조금밖에 안 주면서 우리를 사정없이 부려먹고,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요. 거기다 매일 야단만 쳐요."


사실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와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은 한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한국인 가게 주인은 그런 행동을 흑인이나 히스파닉이라는 '특정 인종'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백인과 일본인도 그들의 무뚝뚝하고 나쁜 서비스에 늘 상처를 입는다. 우체국에서 우표 한 매, 시장에서 바지 한 장을 사면서 울어버린 유학생도 있다. 그럴 때 한국인은 농담조로 이렇게 충고한다. "멋진 양복 한 벌 쫙 빼입고, 벤츠를 타고 가봐. 대우가 확 달라질 테니까." (227~228p)



말로만 애국을 외친다

그런데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토록 '한국'에 연연해하는 사람들이 왜 이민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집회에 태극기를 가지고 나올 정도로 대단한 애국자들이 왜 나라를 버린 것일까? (230p)


한국인들은 자신과 가족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라면 나라도 쉽게 버리고, 또 기회가 생기면 쉽게 돌아온다. 한국인은 국가를 믿지 않는다. 한국인의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은 특별히 그것을 인식하지 않고 사는 일본인보다 결코 강하다고 볼 수 없다. 역대 정권 담당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말을 목이 터져라 외친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233p)


한국인은 민족주의로 인해 국가를 위해서라면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본에는 일본 특유의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이 있는데 반해 이와 달리 한국은 오로지 자기자신과 가족을 위한 이기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비정상적인 친북 열풍

매우 슬픈 일이지만, 이제 통일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김정일이라는 사람을 걸출한 정치 지도자라든지, 개방적인 성격이라고 추켜세워서는 안 된다. 현재 그는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른 자신의 왕국을 되살려줄 원조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미국에 대해서는 미사일을, 일본에 대해서는 전쟁책임을, 한국에 대해서는 민족주의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적중하고 있다. 북한을 호전적이라고 책망할 만큼 미국은 평화주의자가 아니고, 일본을 전쟁 책임을 말끔히 청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은 민족주의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다. (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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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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