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필자는 <혐한류>를 읽어본적이 없다. 재일코리안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다. 이 말은 곧 재특회와 재일특권에 관해서도 일자무식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무지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경험, 보편적인 상식과 윤리에 기대는 것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주지한 상태에서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혐한과 헤이트스피치'를 읽고


대담내내 질문자인 야스다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차별적인 언행은 결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재특회와 같은 단체가 왜 이런 시위를 벌이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나는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서 일본을 접해왔다. 특히 K-pop으로 일본내에서 한류열풍이 고조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본 언론을 쭉 지켜본 사람으로서, 현재 일본의 혐한분위기는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한국의 책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대담의 본론은 3회부터다. 야마노는 한일우호가 목적이라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의 국민이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혐한류>를 출간했다. 그리고 야스다는 혐한의 원점으로 이 <혐한류>를 지목했다. 야스다는 한일우호와 달리 차별을 말하는 <혐한류>의 모순을 오히려 교묘하다고 표현했다. 물론 야스다는 <혐한류>를 읽어서 내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기에 뭐라고 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야마노가 말했듯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나쁜게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라는 나라는 자국을 비판하면 미친놈이나 매국노, 친일파로 매도하기 일쑤 아니던가?


야마노는 <혐한류> 내용의 출처가 인터넷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지만 출처를 분명히 했으니 문제될건 없다. 다만 최근 일본언론이나 SNS에서 편향되거나 아예 잘못된 정보가 사실인듯 흘러다니는 것과 같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야마노의 발언중 신경 쓰이는 것은 질문자인 야스다도 느낀 '만화니까요'라는 말로 피해가려는 점이다. 물론 작자가 만화를 그릴 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런식으로 무책임하게 생각했다면 작품의 본의 역시 설득력을 잃기 때문이다. 야마노의 말대로라면 <혐한류>는 당초 작자가 밝힌 목적이 아닌 흥미와 돈벌이라고 해도 명분이 성립될 것이다.


이 대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4회라고 할 수 있다.


야마노가 말했듯이 혐한분위기가 시작된 것은 한국인의 추태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에 언론이 눈을 감아줌으로서 사실상 불을 지핀셈이다. 이 부분은 필자 역시 정말 절실히 느껴왔던 부분이다. 한류가 한창일 때 한국의 아이돌그룹이 일본 방송에 나오면 아나운서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하기 바빴다. 당시 일본의 방송은 너나 할 것없이 한국을 주제로 한 방송이 많았는데 한국의 비판 보도는 정말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여기에는 몇가지 나름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시기적으로 일본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보다 동아시아 중심외교를 내건 시점이었다. 둘째, 언론사의 비즈니스적인 측면이다. 침체된 일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방송은 한국인인 내가 봐도 민망할정도로 한국의 좋은 점만 골라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때도 이미 일본 사회 어딘가에는 혐한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폭발직전의 '무언가'로서 말이다. 더구나 일본 방송사들은 앞다퉈서 한국 드라마를 편성했으니 일본인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 위화감이 드냐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언론이 국민의 생각을 전혀 보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오히려 국민의 생각과 반대로 흘러가면 어떤 반작용이 생길지.


이 혐한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한국에게 있었지만 한국은 그 열쇠를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한국정부와 한국인은 오만방자했다. 한류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자 콧대가 높아져서 오히려 일본을 깔보는 사람들만 늘어날뿐이었다(그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화 되어 있다.). 이런 태도에 일본인은 질려버린 것이다. 나는 이때 한국인은 절대 치켜세워주면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인은 자신이 남보다 위에 있을때 겸손이라는걸 잊어버린다. 한국인을 단어로 표현하면 '자만' 그 자체인 셈이다.


유명한 학자인 에즈라 보걸은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각주:1]

그는 더 나아가 "일본이 항상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국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며 "이에 반발한 일본내 의견이 악화되고 더 우익편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 했다. 미국의 입장과 관련해서도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에 미국이 실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 한국 지도자가 문을 닫아 건 데 대해 더 실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극히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이지만 이 기사를 본 네티즌들은 에즈라 보걸 교수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일본의 우경화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다름아닌 한국과 중국의 맹목적인 반일정책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야마노가 말한대로 일본내에서 한국 비판은 금기였다. 한류열풍이 한창일때 중국의 모조품에 관한 발언은 방송에서 종종 볼 수 있었지만 한국을 향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한류에 대해서 보도할 때 아나운서 얼굴이 다 무표정이거나 심각하게 굳어버리는걸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나는 한류의 종국이 혐한이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말의 희망에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일본의 이러한 우호적인 태도가 한국인을 바꿔놓기를 바랐다.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역시나'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재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통명보도 이야기는 확실히 부당하게 느껴진다. 재일은 죄를 지어도 실명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야마노는 이렇게 말한다.

"매스미디어는 과잉이라고 할만큼 재일을 약자로서 지키고 있습니다."

"한일관계에서 한국은 항상 전쟁의 피해자이며, 재일도 가엾은 약자라는 점입니다."


내가 위안부를 통해서 느낀 마이너리티 성역화라는게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허를 제대로 찌른 셈이다.


한국의 날조문화는 비판 아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물론 야스다의 말대로 국민들 대다수가 그 날조를 인식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한국인 스스로가 이를 묵인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그리고 <혐한류>의 출간시기로 볼 때 적절한 비판인 셈이다.


재일특권에 대해서도 야마노는 정론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야스다가 70년이나 지난 '역사'를 운운하고, 자국민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모습이 한참 설득력 떨어진다. 생각을 해보라. 조선족이나 화교가 다른 외국인보다 우월적인 권리를 지닌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개중에 한국보다 우월적인 권리가 존재한다면 과연 한국인들은 가만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혐한류>를 읽어본적이 없다. 표현방식의 정도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대담에서 야마노는 대부분 정론을 이야기했고 여기에 공감한다. 하지만 야스다가 말한 혐한의 원류가 <혐한류>에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야스다 고이치는 한국에게 우호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대담을 읽어나가야 한다.) 일본 저널리스트가 한국편을 든다고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혐한류>는 한국의 추태와 만행없이 탄생할 수 없었을것이다. 혐한의 원류는 <혐한류>가 아닌 한국인이다.

  1.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1&aid=0002455807">韓·中 과민반응에 日우경화 심화 우려</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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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스토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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